GS건설 도시정비팀 신호준 부장

GS건설 도시정비팀 신호준 부장

가을이 왔다. 수주전의 계절이 왔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고 인생과 삶을 돌아보는 정서의 계절이지만, 올해의 가을은 필자 같은 건설회사 정비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의 계절이다. 한남동에서 갈현동에서 멀리 광주 대구 부산에서도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일정이 진행돼 각 회사의 수주물량을 확보하려는 영업직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탓이다.

입찰을 위한 홍보활동이 본격화되고 서로간의 치열한 눈치싸움까지…. 어찌 보면 피를 말리는 소리 없는 전쟁의 서막이 올라가고 있다. 입찰을 위한 오랜 기간 동안의 영업활동과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입찰제안을 위한 설계나 제안서 준비과정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는 고통과 고난의 시간들이다.

더욱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 성공하는 회사와 실패하는 회사 간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공한 회사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카타르시스를 맛보겠지만, 실패하는 회사와 직원들은 오랜 시간과 비용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에서 오는 허탈함과 허망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의 성취감과 희열을 맛보기 위해 불을 보면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수주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직원으로서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 회사의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수주전에 뛰어든 순간만큼은 모든 일상적인 시간들은 올스톱된다. 개인적인 일정은 모두 취소되고, 오로지 입찰일정에만 매달리며 24시간 입찰을 위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찌 보면 가장 고난도의 감정노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정비영업 하는 직원들은 건강이 많이 안 좋은 경우가 상당하다. 개인시간도 없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찰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입찰 이후에도 시공사 선정일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망가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더욱이 수주가 실패했을 경우 그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하니, 심한 경우 담당했던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심각한 중병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한 경우도 여럿 봤다.

그나마 젊었을 때는 체력도 버텨주고 건강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한해 두해 직급은 올라간 반면, 나이가 들고 오랫동안 정비영업 일을 하다 보면 일에 치이고 사람에 다치고 체력과 열정도 예전 같지 않음을 서서히 느끼게 된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각 시공사 정비영업직에도 고 연령대, 고 직급자들로 가득하다. 예전 같으면 사무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보고 업무지시만 했었던 소위 말하는 중년의 나이든 직원들이 요즘은 직급만 높을 뿐 어떨 때는 아르바이트나 일용직보다 더 험하고 힘든 일도 해야 할 경우도 많다.

가을이다 보니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도 나이 듦과 인생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인생의 마지막까지….

어느 연예인이 “항상 오늘의 나이가 인생에서 처음 겪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겠다”라고 했다는데, 중년 노년을 겪는 우리네 청춘들도 똑같은 심정인 것 같다.

처음 겪어보는 환경, 처음 겪어보는 감정, 처음 겪어보는 몸. 물론 감정이나 마음보다 몸이 먼저 변화되고 혼란스러운 순간을 지나게 되지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던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당황하게 마련이고, 일순 지나면 서글퍼짐을 어쩔 수 없다.

언론에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저 재밋거리로나 여겼었으며 중년‧노년에 대한 글들도 관심거리 밖이었다. 봄‧여름에는 몰랐지만 단풍 들고 낙엽지면 마음이 스산하고 쓸쓸해지는 것처럼 우리 몸도 언제나 푸르고 싱싱할 것이라 생각하고 주변의 나이든 사람을 봐도 내가 겪어야 할 나이임이 실감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노안이 오고 머리가 세어지고 피부가 주름지고 근력이 떨어지고 특히나 술을 마신 후 숙취에 깊이 시달리게 되거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지면 ‘아 내 인생에 가을인 중년이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이렇게 소소하게 겪는 몸의 변화보다도 더 큰 것도 있다. 예전엔 덜 아팠던 상황이 어느새 더욱 아프게 다가오고, 당혹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인생의 어느 변곡점이거나 삶의 고비라고 까지 느끼는 순간도 겪게 된다.

물론, 주변의 젊은 동료 선후배직원들이 젊은 나이에 큰 수술을 하거나 심지어 요절하는 경우도 보고, 또 그런 경우 ‘나는 괜찮은지’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됐던 것이 이제는 상시적으로 내 몸과 건강에 대한 걱정이 붙어 다니는 때가 된 것이다.

40대 이후로 접어들어 친했던 회사 동료, 후배 그리고 학교 동기동창들 중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 몇 분 있다. 부음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허망함. 이제 제법 세월이 지나 그때의 감정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때때로 생각이 나고 문득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대부분 건강상의 이유로 예기치 않게 급격히 상태가 좋지 않아져 수술직후에 또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 친구, 동료의 장례식장을 찾게 되는 경험은 참 마음이 좋지 못하다. 바로 엊그제 나랑 술 마시고 웃고 떠들던 사람의 사진이 국화꽃에 둘려 싸여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삶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마 이 의문은 태고 적부터 인간이 인간스러움을 갖췄을 때부터 품어왔던 생각이었으리라. 무엇보다 죽음 앞에서는 영원한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종교가 생기고 철학이 생기고 인간존재를 탐구하게 되고 점점 확장돼 달로 별로 은하계로 우주로 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까. 마음으로 종교를 낳고 물질적으로는 과학을 낳게 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의 삶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측과 상상은 가능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

죽음이 두려운 만큼 삶과 탄생도 무엇인가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 생각들은 그저 뇌라는 물질이 점점 자라면서 자동으로 자라는 것일까 아니면 뇌에 담기는 내용들이 많아지면서 늘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무엇인가가 우리를 창조했든, 진화의 산물이든 빅뱅 이전의 그 심연의 암흑 속에서 어떻게 삼라만상이 태어나고 만들어졌을까. 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왜 사라지는 것일까. 모든 것들이. 태어나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질이 생명을 만들고 다시 생명을 빼앗아 사라지는 반복 속에 인간의 문명은 또 왜 번창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직업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공부하는 종교인들도 많겠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간혹 이런 생각들을 품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내 몸과 숨결 생각들은 과연 나를 이루는 것들일까, 무엇인가의 조종일까. 다른 인간존재들과 나의 관계는 무엇일까 왜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것일까. 가족 직장동료 친구 지나가는 사람들 어디선가 부딪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정해진 것일까, 그저 우연의 우연일 뿐인 것일까.

신비로운 초자연 현상과 심령으로만 풀기에 우리는 너무 미약하고 하찮을 뿐인데도 일상의 우리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또는 그저 심심해서 부대끼고 갈등하고 아파하고 서로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부처님, 예수님, 모하메드는 과연 이 문제를 말끔히 풀고 간 것이 맞는 것일까. 지금 그분들은 어느 존재로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왜 수천년 전에는 그런 성자가 나타났었고 최근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매일매일 언론 뉴스에 오르내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들… 전쟁 내란 질병 가뭄 홍수 지진 태풍 가난 기아… 거리를 들판을 타국을 떠도는 난민들… 한쪽에서는 물질적인 풍요가 넘치고 넘쳐 주체 못하는 불균형. 진정한 자유, 진정한 평등, 진정한 평화는 인류에게는 그저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병으로든 사고든 늙어서든 인간존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대부분 천년만년 살아갈 것처럼 오늘 이 시간에도 싸우고 시기하고 욕망하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더 차지하려 더 올라가려 누군가를 짓밟고 누군가의 것들을 빼앗으려 혈안이 된다. 아니 그것들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물질적인 부를 자기 후손들만 누리게 하려고 미처 날뛰는 인간들도 많다. 심지어는 종교에서도 물려주는 세상 아닌가. 인간이 신을 세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누구는 그 옛날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허무해 하지 않았던가. 대부분 인간들은 죽음이 목전에 다다라서야 느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면서도 타인의 죽음 앞에서는 문득문득 자신의 죽음도 돌아보고 더불어 삶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지 않겠는가. 죽음 앞에는 모든 것이 덧없음을….

한줌 재로 사라지는 한 인생을 보면서 그 순간만큼은 덧없는 인생에 무언가 가치 있게 의미 있게 살자고 다짐을 해보지만, 돌아서면 하루하루 악착같이 천년을 살듯이 집요해지고 혼탁한 삶으로 다시 빠져들고 만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산다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덧없는 인생살이 어차피 사라질 것 대충 살아도 될 것 같지만, 어찌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겠는가. 이리저리 엮인 인연의 끈들에 겹겹이 쌓여서 운명과 운명 속에, 만남과 이별과 희로애락 속에 고해의 삶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을….

키우던 앵무새 한 쌍이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을 때도 마음이 덜컥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더없이 경건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더 인생을 값어치 있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련다.

오늘도 수주전의 일선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는 모든 시공사 정비직원들의 건강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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