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판자촌을 장식한 예술의 감성

금채 / 자유기고가

 

마을 입구에서부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가파르다. 마을버스도 가파른 오르막길이 버겁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힘겹게 오르내린다. 오르막길을 앞에 두고 마을버스를 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산보 겸 운동 삼아 마을버스 대신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안내하는 표지판으로부터 20여 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좀 전에 ‘부르릉~’ 나를 지나쳐 간 마을버스 생각이 간절할 즈음, 마을 정상이자 마을버스종착지에 다다른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 선 이곳은 서울에 있는 몇 안 되는 벽화마을 중 하나로 어느 덧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3동 9-81번지, 일명 ‘개미마을’이다.

인왕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마을 정상에서 시내 방향을 바라보면 시대가 두 개로 나뉘는 듯하다. 개미마을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지붕을 머리에 인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마치 한 집인 양 모여 있지만, 눈을 돌려 마을을 벗어나면 저 멀리 북한산과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나 찾아볼 듯한 풍경, 남루하지만 왠지 정겨운,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개미마을은 서울의 몇 남지 않은 달동네로 6.25 전쟁 직후에 만들어졌다. 전쟁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임시로 천막을 두르고 살기 시작한 것이 마을의 시작이다. 당시에 개미마을은 ‘인디언촌’이라고 불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마을 같아서였다고도 하고, 인디언처럼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인디언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1983년 ‘개미마을’이라 새롭게 이름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마을이름이 바로 개미마을이다.

마을의 태생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 개미마을은 가난한 동네다. 1만5,000평 정도에 불과한 마을에 210여 가구 4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고, 다른 가족들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도 많다.

전깃줄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길은 이리저리 꼬여 있다. 큰 골목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작은 골목들이 가지처럼 뻗어있다. 말 그대로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골목 사이사이에 놓인 좁은 계단들은 언제 끝나나 싶게 길고, 낡고 작은 집 문 앞에는 하얗게 타버린 연탄이 쌓여져 있다. 노인들이 해마다 겨울을 지내기 위해 얼마나 힘겹게 연탄을 지고 올라갔을까 눈에 선하다.

다리 위에 위치한 집이나 바위 위에 있는 집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니 빨래와 지붕에 놓인 생활 소품, 환풍기, 비새는 것을 막기 위한 천막 등이 보인다. 대부분의 집들이 정돈되지 않은 외형으로 40~50년 이상을 버텨온 탓에 곳곳에 금이 갔고, 이런저런 낙서로 가득하다. 페인트칠도 안 되어 있는 집에 형형색색으로 그린 담장과 빨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헌데, 낡은 기와와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벽 사이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지난 2009년 서대문구와 금호건설의 후원 아래 5개 대학 미술학과 130여 명의 학생들이 벽화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조성한 벽화들이다. 마을 곳곳에 꽃이며 나무, 강아지의 그림으로 온기를 불어 넣었다. 마을 분위기가 바뀌자 주민들도 표정이 환해졌다.

벽화마을로, ‘7번방의 기적’ 영화촬영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연인과 함께 찾아오곤 한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하나인 동네의 새 단장이 주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만든 것이다.

벽화들을 살펴보다 보면, 하늘색으로 뒤덮인 구름만으로 하늘 위에 집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무지개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는 벽화 골목이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마을 중간쯤 오면 슈퍼이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벽화로 ‘Bus Stop' 이라고 쓰인 정류장 앞에 누구든 쉬라고 배려한 평상이 참으로 푸근하다.

겨우내 얼었던 집들은 이제 따뜻한 햇볕아래 수리가 한창이다. 지붕을 고치는 집, 벽에 칠을 하는 집, 집하나 건너마다 있는 텃밭엔 봄을 기다렸던 싹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었다. 갈라진 벽 위에 그려진 해바라기가 따뜻한 햇볕 쪽으로 기울 것만 같다.

 

※ 대중교통으로 개미마을 가는 법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하차

․ 출구 반대방향 20미터 지점 정류소에서 서대문07번 마을버스 승차

․ 개미마을 정류소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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