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

◇ 들어가며

2018년 하반기에 있었던 대법원 판례에 관해 알아본다. 조합원(또는 조합원이었던 사람이나 현금청산대상자가 된 사람)으로서 관리처분계획 고시일 이후부터도 부동산을 인도하지 않는 자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관 규정에 따라 ‘사업시행계획에 따라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에 많은 조합에서는 건물 명도의무를 지체하는 특정인들(특히, 조합의 수많은 권고와 합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조합의 재건축 등 사업을 방해하는 의도를 가졌다고 볼 만한 자들)에게 사업 지연에 따른 사업비 이자(금융비용) 등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대체로 입증부족으로 인해 인정되지 않거나 화해권고결정 등으로 종결되는 등의 사례가 많았다.

아래에서 알아볼 사건은, 대법원이 정비사업구역내 ‘부동산 인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명확히 한 사안이다.

 

◇ 사건 경위

원고는 도시정비법상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고, 피고들은 그 사업시행구역 내에 있던 아파트의 구분소유자로서 원고의 조합원이거나 조합원이었던 사람이다. 원고의 정관 제10조 제1항 제6호는 ‘조합원은 사업시행계획에 의한 철거 및 이주의무를 부담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이하 이 사건 정관 규정).

피고 C, D, E, F를 비롯한 일부 조합원들은 2010년 10월 용산구청장이 원고에 대해 한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위 행정소송의 제1심,항소심, 상고심은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의 무효 확인 등을 구하는 청구를 모두 배척했다. 피고들은 2011년 8월부터 9월까지 사이에 별건 민사소송에서 원고에게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인도하라는 가집행선고부 제1심 관결을 선고 받았고,그 무렵 판결 결과에 따라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인도했다.

 

◇ 법원의 판단

위 사건의 원심은 피고들이 원고에게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인도하는 것을 지체해 재건축사업 시행이 지연됐다는 이유로 원고가 구하는 2011년 5월 1일(피고들의 명도의무가 발생하는 이 사건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일인 2011년 2월 18일 이후이다)부터 이 사건 각 부동산의 피고별 인도 완료일까지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는 도시정비법 제49조 제6항(관리처분계획의 효과)과 이 사건 정관 규정에 따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의 시행자인 원고에게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의무를 지체했다는 것이다.

또한 원심은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해 기본이주비와 사업비에 관한 대출금에 대해 인도의무가 지체된 기간 동안의 이자와, 이주비를 신청하지 않은 조합원에게 같은 기간 동안 원고가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이자를 합한 비용을 손해라고 봐 위 금액에 피고별 지체일수를 곱한 액수를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다만, 원심은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피고들의 책임 비율을 20%로 제한했다.

이후 대법원은, 위와 같은 원심 판결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손해배상 책임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봤고, 위 손해배상 청구 부분은 원심 그대로 확정됐다.

 

◇ 결론

이미 대법원에서는 판결(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다85352)을 통해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인도의무를 불이행한 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하고 있었는 바, 기실 대법원이 위와 같은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 할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위 판례는 도시정비법을 위반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의미 있는 판례이기도 하다.

다만, 위 판결은 몇 가지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다.

첫째, 과연 기본이주비 및 사업비 대출금으로 인해 발생한 이자 및 이주비 관련 금융비용을 단지 건물명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들에게 전부 전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건물명도의무 불이행과 금융비용 등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및 손해배상 관련 법리가 보다 상세하게 검토돼야 할 것이다.

둘째, 원심 및 대법원에서 위 문제되는 거주민들의 책임 비율을 20%로 제한한 점이다. 사법부의 입장에서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막대한 사업비 등 금융비용 관련 손해를 전부 조합원들에게 책임지우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수긍된다. 그러나, 책임비율을 굳이 20%로 제한한 근거는 원심 판결을 보더라도 구체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대법원에서도 특별한 근거를 설시하지 않고 있다.

도시정비법에서는 분명히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로 인한 강력한 효과를 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들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는 실정인데, 사법부조차 위법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책임비율까지 제한하면서 ​민사상 책임까지 실질적으로 면책시킨다면, 도시정비법의 관련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추후 위 손해배상청구 등 사건에 대해 보다 정치한 논리의 판례가 도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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