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불안한 정비사업 기상도, 하루 빨리 쾌청해지길…”

정비사업 지침서 ‘2020 도시정비법 해설’ 펴내

 

법무법인(유한) 현 안광순 파트너 변호사 / 한국도시정비협회 자문위원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활황기라고 할 수 있었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 열기에 비해 정비사업 관련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개별 사업장의 현황도 그렇고, 정비사업 관련 전문지식의 생산도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조합․추진위 중심의 단체 등을 중심으로 현장사례 등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교류를 통해 정비사업 노하우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조합․추진위 임원뿐만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의 정비사업 이해도도 높아졌다.

정비사업에 포커스를 맞춘 석사과정이 개설됐는가 하면 다양한 주제의 학위 논문들이 속속 발표되고, 전문가들의 저술활동도 활발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의미 있는 정비사업 전문서가 한 권 발간돼 눈길을 모은다. 정비사업 전문변호사로 입지를 확고하게 굳힌 안광순 변호사(법무법인 현 파트너변호사)가 펴낸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이 그것이다.

통상 전문서들이란 읽는이들에게 친절하지 못하다. 정보 및 지식의 전달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과도할 정보의 정보량이 오히려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건조한 논문식 문체는 읽는 속도를 현저하게 느리게 한다. 호기롭게 읽기 시작하더라도 막대한 페이지를 자랑하는 이런 전문서를 마지막 장까지 독파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고, 대개는 책상에 잠시 머물다가 책장 안의 장식품 신세가 되기 일쑤다.

‘2020 도시정비법 해설’ 역시 이런 전문서의 특성을 완전하게 벗어던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신 읽는이들이 시작부터 ‘두께’의 중압감에 눌리지 않도록 상․하 두 권으로 구성하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게다가 도시정비법 해설임에도 무의미한 법조항 분석 및 해석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판례와 실무를 병기함으로써 이해도를 높였고, 사업추진 절차에 맡게 기술함으로써 가독성을 확보했다. 15년이 넘도록 정비사업 한 분야에만 ‘올인’한 저자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진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안광순 변호사를 만나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상투적인 질문 같지만,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을 저술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재건축․재개발로 대변되는 정비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도시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새로 정비하거나, 주택 등 건축물을 개량‧건설하는 등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3년 7월 시행된 도시정비법은 도시재개발법에 의한 주택․공장․도심재개발사업, 주택건설촉진법에 의존했던 재건축사업, 도시저소득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에 의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합한 포괄적인 입법이었다.

하지만 법률 시행 이후 해당 분야 법률전문가들조차 통달했다고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잦은 개정이 이뤄지면서 ‘누더기법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고, 최근 전면개정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정비사업 현장과 유리된 법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그럼에도 정비사업을 규율하고 있는 기본 법률이라는 점에서 도시정비법은 정비사업 종사자들이 반드시 이해하고 숙지해야 하는 법률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법고시를 합격한 후 정비사업 분야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래 15년이 넘는 동안 전국의 수많은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각양각색의 소송업무 등을 수행하면서 나름 ‘전문변호사’로서의 입지를 다져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실감하곤 한다.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은 이런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쓰게 됐다.

 

◇ 책으로 펴내기까지 꽤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아는데?

후배이자 동료인 김래현 변호사와 함께 ‘정비사업 실무의 법률쟁점’이란 책을 발간한 적이 있지만,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일단 둘이 아니라 혼자 저술해야 했던 것도 그렇고, 책을 쓰는 중에도 수시로 법률이 개정돼 쓰고 고치고를 반복해야 했다. 책을 펴내기까지 꼬박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처음 3년간은 그냥 시작만 한 채 흘려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법 개정이 너무 잦아 이를 수정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책을 충실하게 만들려면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변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17년 2월 8일에 도시정비법이 전면 개정되었을 때는 허탈한 마음에 한동안 아예 집필을 멈추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2018년 초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에 약 2년여 동안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저술에 매달린 결과 집필을 완성할 수 있었다.

 

◇ 전문서임에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구성한 것이 역력하다.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지난 15년간 200여 조합을 자문하고 소송을 대리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법령, 판례, 행정부 유권해석, 실무처리 등을 종합해 법리와 실무가 함께 이해될 수 있는 책을 만들려 했는데, 다행히 성공한 것 같다.

일단 전문가(법조인, 행정청 공무원,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등)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록, 일반인(조합임원, 조합원 등)에게는 주요쟁점을 쉽게 찾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를 위해 법령의 조문 순서와 사업진행의 순서에 따라 서술함으로써 정비사업진행의 전체 흐름과 단계별 쟁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고, 목차에는 관련 법조문을 명기해 단계별로 필요한 조문과 쟁점을 찾기 쉽도록 했다.

도시정비법과 관련된 관계법령, 시・도 조례, 행정규칙 등도 중요쟁점과 관련해 필요한 범위에서 기술했으나, 방대한 관계법령 등을 모두 기술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관련 내용 별로 관계법령 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명칭 등을 기술해 뒀다.

도시정비법은 잦은 개정과 다중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각 조문과 쟁점에 대한 해석에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은 대법원 판례와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하급심 판례, 행정부 유권해석, 실무 변호사들의 견해대립 등 다양한 해석론을 담은 후, 이를 종합해 합리적 해석을 찾아가고자 했고, 이에 따라 일선 현장에서 실무상 유의해야 할 점을 기술했다.

이외에도 도시정비사업은 공익사업으로서 행정청의 인・허가에 따른 행정소송이 자주 발생하고, 정비구역 제척을 위한 토지분할소송 등 고유의 독특한 소송 등이 존재하는 만큼 당사자 적격, 소송물, 소의 이익, 청구취지와 주문 등 재판실무에 도움이 되는 전문적 내용을 포함했으며, 잦은 개정으로 인한 조문 상호간의 충돌 등 입법론적 문제점과 개선방안도 함께 기술했다.


 

◇ 정비사업 관계자들이 알아야 할 최근 주요 법률쟁점을 몇 가지 소개한다면.

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은 조합원 수 산정방식을 규정하면서 수인의 토지등소유자를 1인의 조합원으로 산정할 경우를 규정하고 있고, 제76조 제1항은 1인의 토지등소유자에게 1주택 분양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행정부에서는 “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 조합원 수 제한은 투기목적으로 분양권 수를 늘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입법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수인의 토지등소유자가 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에 따라 1인의 조합원으로 산정되면 법 제76조의 적용에 있어서도 1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오래도록 견지해왔다.

이에 반해 개인적으로는 “도시정비법 제39조 조합원 수 제한은 총회의결권을 인위적으로 늘리고 외부세력 등을 개입시켜 조합원의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입법취지가 있다고 봐야 하며, 설사 제39조가 분양권을 제한하는데 입법취지가 있었더라도 입법취지만으로 도시정비법 제76조 명문규정에 반해 분양권을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제한의 법률유보 원칙에 위반되는 만큼 토지등소유자별로 1주택을 분양해야 한다”는 견해를 오래도록 주장해왔다.

올해 1월에 광주고등법원은 나와 같은 견해에서 “조합설립인가 후 양도로 수인의 토지등소유자가 된 경우 도시정비법 제39조에 따라 총회 의결권 행사 등은 1인의 조합원으로 산정해야 하지만 토지등소유자의 핵심적 권리인 도시정비법 제76조의 분양권에 이를 확대 적용해 분양권을 박탈할 수는 없고, 토지등소유자별로 분양신청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상고가 제기되지 않아 대법원의 판단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주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본다.

한편, 조합임원 해임총회와 관련해서도 법령의 개정으로 종전 대법원 판결이 적용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일선에서 이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종전 대법원 판결은 “조합원 발의로 조합임원을 해임하는 총회에는 10% 직접 출석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시한 적이 있는데, 당시 법령에서는 해임총회의 경우 일반총회에 관한 도시정비법 제24조를 모두 배척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현행법 제43조 제4항은 해임총회에 관해 “제44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라고 개정해 법 제44조 제6항의 직접 출석에 관한 요건을 배제하지 않고 있어서 10% 이상이 직접 출석하지 않은 임원 해임총회는 위법하다고 봐야 하고, 종전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서면결의서만으로 해임총회가 이뤄지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데, 법령개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이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가?

정비사업을 올바로 이해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이 되는 도시정비법에 대한 숙지뿐만 아니라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정비사업 고유의 특성상 다양한 분쟁 및 소송이 빈발하기 때문에 행정법과 민사법, 형사법, 절차법 등 유관법률에 대한 이해와 판례, 실제 사업진행과정에 대한 실무능력이 뒷받침 돼야만 한다.

미흡하나마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이 정비사업 분야에 진입하고자 하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되기를 바라며, 또한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묵묵히 정비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조합․추진위원회와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종사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희망한다.

여전히 흐리고 불안한 정비사업 기상도가 하루라도 빨리 쾌청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2020 도시정비법 해설’이 정비사업의 분쟁과 합리적 해결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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