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유한) 현 김은미 변호사

법무법인 현의 ⌜정비사업 법률산책⌟ ▮

 

법무법인(유한) 현 김은미 변호사

∥ 들어가며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사업 진행 중 기존 시공자의 선정을 취소하고 공사도급계약을 해제한 다음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는 일은 업계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시공자의 과실로 인해 공사도급계약 상 해제 또는 해지 사유에 명백하게 해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업 진행상의 이유로 시공자를 교체하는 많은 경우 해제 또는 해지 통지 단계에서 해제․해지가 적법한지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예비적으로 민법 제673조의 도급인의 해제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선정이 취소된 기존 시공자는 도급계약 해제의 효력을 다투면서 “계약상의 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조합의 해제권 행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도급계약 해제를 의결한 조합 총회결의의 효력정지를 구하거나 혹은 새로운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절차 등을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계약 상 해제가 적법한 지 여부는 본안소송에서 다퉈야 할 성질로 가처분 재판부에서 소명자료를 검토해 그 당부를 판단하기란 실로 녹록치 않다. 때문에 시공자가 신청한 각종 가처분을 방어할 때 조합 측에서는 예비적으로 행사한 민법 제673조의 도급인의 해제권을 들어 해제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시공자 측 소송(신청)대리인들은 최근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공사도급계약의 특성 상 민법 제673조의 임의해제권이 배제된다”거나 혹은 “약정해제 사유 없이 행사하는 민법 제673조의 해제권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법원의 입장을 살펴본다.

 

∥ 관련 판례

가. 대구지방법원 2019카합10218 입찰절차 진행금지 등 가처분

이 사건 계약은 단순한 도급계약과 달리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사업경비 대여나 분양업무 수행 등을 비롯해 재건축사업 시행과 관련된 복잡한 법률관계를 정비하고 있어 도급에 관한 민법 제673조가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별도로 위 계약 제34조로 해제․해지 사유 및 절차, 정산, 손해배상책임 등을 정한 점, 민법 제673조에 따라 채무자가 손해를 배상하고 언제든지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할 경우 그 해제로 인해 복잡한 법률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자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채무자의 특성 상 손해배상이 사실 상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한 점 등을 고려하면, 채권자와 채무자가 위 계약에서 정한 해제․해지 사유 및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없는 것으로 약정했다고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 서울동부지방법원 2020카합10257 부동산 인도단행 가처분 및 철거

민법 제673조에서는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채무자가 현재까지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를 완성하지 못한 사실이 소명되며, 채권자가 2020. 7. 28. 채무자에게 이 사건 도급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를 통지해 위 통지가 채무자에게 도달한 사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 도급계약은 적법하게 해제됐다.

…(중략)…

이에 대해 채무자는 이 사건 계약조건 제33조에서 이 사건 도급계약의 해제․해지사유를 명시하고 민법 제673조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약정했으므로, 채권자는 민법 제673조에 따라 이 사건 도급계약을 해제할 수 없고, 이 사건 계약조건 제33조에 따른 해제사유는 부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계약조건 제33조에서 민법 제673조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규정한 부분은 없고, 이 사건 계약조건 제33조에 따른 약정해제와 민법 제673조에 따른 임의해제는 그 법률요건이나 효과 등에 차이가 있어 양립이 가능하며, 달리 채권자와 채무자가 민법 제673조를 적용하지 않기로 약정했다고 볼만한 소명자료가 없으므로, 채무자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 마치며

사실관계가 유사한 사안에 대해 대구지방법원은 계약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에 비춰 볼 때 민법 제673조가 적용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시공사 측의 손을 들어준 반면,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명시적으로 민법 제673조를 배제하는 계약 조항이 없는 이상 도급계약의 일의 완성 전에는 제673조의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봐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과 시공자의 공사도급계약 해제는 종종 부부의 이혼에 빗대어지곤 한다. 약정해제 사유를 들어 민법 제673조의 해제권 적용을 배제하고 본안소송이 확정종결 될 때까지 계약의 효력을 유보시키는 것은 이미 파탄돼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오로지 상대방 배우자를 괴롭힐 의사로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도 혼인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민법 제673조에서 도급인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수급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도급인의 일방적인 의사에 기한 도급계약 해제를 인정하는 대신, 도급인의 일방적인 계약해제로 인해 수급인이 입게 될 손해, 즉 수급인이 이미 지출한 비용과 일을 완성했더라면 얻었을 이익을 합한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민법 제673조의 해제권의 주된 취지는 도급인에게 ‘자유로운’ 해제권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해제 사유는 불문하고 특별한 해제사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바, 도급 계약 상 약정해제 사유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입법자의 의사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급인의 손해는 금전으로 충분히 전보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계약에 의해 민법 제673조의 해제를 배제하는 내용을 특별하게 규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약정해제권과 별개로 도급인에게 민법 제673조의 해제권은 보장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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