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실패 인정하고 정비사업 활성화 등 공급확대 정책 펼쳐야

호텔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청년주택 '안암생활' 외관 모습.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길을 잘못 들어 수렁에 한 발 빠진 정도가 아니라 끝이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게 빠져드는 게 늪이다. 지난 11월 19일 발표된 ‘대책’까지 무려 24번의 쏟아내고도 참담한 실패만 거듭한 정부의 부동산대책 이야기다.

정부는 11.19대책에서 “최근 계속되는 전세난에 대응하기 위해 앞으로 2년간 전국에 11만 4100가구의 전세 위주 공공임대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민간건설사와 매입약정을 통해 다세대, 오피스텔 등 신축 건물을 사전에 확보, 서둘러 공공임대로 공급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시내의 노후 상가와 오피스, 빈 호텔 등 숙박시설 등도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고도 했다.

‘호텔임대’ 이야기에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1월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을 ‘빵’에 비유하는 발언을 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조롱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현미 장관은 ‘전세난 해결을 위해서는 다세대보다 아파트를 공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아파트는 공사기간이 많이 걸려 당장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아파트 대신 빌라 등을 확보해 질 좋은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서는 “2021년과 2022년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어드는데, 그 이유는 5년 전에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대폭 줄었고 공공택지도 상당히 많이 취소됐기 때문”이라며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밝혀 비난을 자초했다.

호텔 임대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 “호텔거지를 양산했다”는 비난이 이는 것에 대해서도 김현미 장관은 “호텔을 리모델링해서 청년 1인 가구에 공급하는 현장이 내일 공개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12월 1일 공개된 호텔임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담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인 가구를 수용하는 기숙사형 청년주택이었기 때문. 특히, 호텔임대주택이지만 개별 취사시설이나 세탁시설은 없고, 가구당 면적도 전용 13㎡ 수준이라 ‘고급 고시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월 1일 LH가 공개한 서울 안암로 ‘안암생활’은 호텔을 매입해 리모델링했는데, 사업비만 220억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안암생활’ 자체가 올해 2/4분기에 사업자 공모를 진행, 11.19대책(11만4000가구)에서 밝힌 공실 상가·오피스·숙박시설 리모델링 물량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입주자 모집도 전세대책 발표 이전인 지난 8월 완료해 입주를 시작한 상태다. 사실상, 수도권 전세난 해소와는 거리가 먼 임대주택이다. 11.19대책에서 ‘호텔임대’ 이슈가 부각되자 과거 역세권 청년공공임대를 마치 전세대책의 일환으로 끼워 넣은 것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게다가 세대 내부도 일반 주택보다는 고시원이나 기숙사에 가까웠다. 원룸형 주거공간에 개별 세탁시설이나 취사시설은 존재하지 않으며, 욕실과 화장실 공간을 제외하면 빌트인으로 갖춘 침대와 책상·책장 말고는 세탁기·싱크대 등 추가 편의시설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좁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 관리비 6만원 정도 수준이어서 부담이 적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안정적인 전세대책’의 한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입주자가 결혼 등으로 동거인(2인 거주)이 생기면 거주 자격도 박탈된다. 사실상 주거안정에 도움이 되는 주택공급이라고 할 수 없다.

‘호텔임대주택’과 ‘주택≠빵’ 발언 이후 민심은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빵’ 터졌다. “호텔임대주택이라는 ‘안암생활’ 122실을 공급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는데, 과연 돈 값을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시장에 지원을 하면서 공급을 유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거나 “집이란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이지 한 사람이 몸을 뉘어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호텔임대는 그저 좋은 고시원, 괜찮은 기숙사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아파트가 빵도 아니고 밤새 만들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 왜 대책이라고 쓰고 규제라 읽는 대책을 그렇게 많이 때렸는가”나 “아파트 공기 3~4년이면 된다. 그동안 정부 여당과 서울시가 재개발, 재건축만 적극적으로 추진했어도 이렇게 안 됐다”, “빵집도 생각 없이 빵을 만들지 않는다. 수요 예측하고 빵을 만든다. 빵집이라고 허술하게 일 안 한다. 어떻게 정부대책이 작은 빵집보다 못하나” 등의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급확대보다 수요억제로 일관했고, 잡히라던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쳤으며, 임차인을 보호한다면서 내놓은 대책들도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피해만 초래하며 전‧월세 품귀 및 가격상승만 불러왔다.

24번의 헛발질 속에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규제에서 벗어난 지역의 집값이 크게 상승했다.

한국감정원의 발표만 보더라도 올해 7월까지 수도권 상승률은 13.1%로 집계돼 7월 누적은 물론 연간 누적기준으로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의 집값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의 격차가 더 늘어났고, 서울 지역 내의 격차는 줄어들었다. 즉, 서울의 모든 집값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현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단 하나의 성공도 거두지 못한 채 모두 실패했다. 시장의 흐름에 역행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정부의 오만이 가져온 최악의 결과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건만, 이 사실을 정부만 모르고 있다. 혹은 아직도 주머니 속에서 꺼낼 ‘대책’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의도가 좋다고 결과까지 좋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라도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의 반응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주거안정을 위해 부동산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하는가.

대한민국에서 주택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주택 자체가 하나의 재화이자 욕망의 상징이다. 억지로 누른다고 눌러질 욕망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조절하고, 보유세를 중과하면서 양도세는 낮춰주며 매매를 유도해야 한다. 양질의 민간주택과 가성비 좋은 공공임대를 함께 공급하면서 소비자의 선택 다양성을 늘려줘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며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균형을 잃은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코로나19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더 큰 시름을 안겨 주는 부동산대책은 지금이라도 진일보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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