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재건축연한 단축에 공동주택 리모델링 ‘멘붕’

“일희일비 하지 않고 리모델링사업 정착할 수 있는 제도개선 시급”

 

“모든 일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조차 갖춰지지 못했던 척박한 공동주택 리모델링 시장을 개척해가며 현재에 이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된 일의 끝에서 패자로 남게 될까 두려운 심정입니다.”

지난 9월 3일 제6회 레모델링의 날 행사장에서 만난 범수도권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 전학수 공동대표(대치2단지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 조합장)의 솔직한 심정이다.

전 공동대표는 이날 리모델링의 날 총회에서 그동안 리모델링사업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사단법인 한국리모델링협회로부터 협회장 감사패를 수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학수 공동대표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어찌 된 일일까.

“수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인 ‘수직증축’을 위한 관련법 정비가 이뤄진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재건축연한 대폭 단축’이라는 큰 암초를 만나게 돼 공동주택 리모델링 시장의 미래가 또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범수도권 공동주택 리모델링 연합회는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재건축사업 등의 확대·팽창 주택정책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리모델링은 녹색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주택정비사업으로, 신규아파트 수요 해소 및 부동산 가격 폭등완화로 주거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만큼 활성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 추진위원회․조합의 목소리를 모아 지난 2009년 발족했다.

또한 발족 직후 ▲수직증축 허용 ▲세대수 증가를 통한 주민부담 감소 ▲리모델링 관련법규 체계적 개정 등의 내용을 담은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현재까지도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발전을 위해 한결 같이 노력해 오고 있다.

전학수 공동대표는 재건축 규제 등으로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에 대한 기대감만 잔뜩 부풀어 오른 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지난 2008년 대치2단지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의 조합장으로 선임됐다. 또한 여건상 개인대출을 받아 사비로 1년여 간 조합을 이끌어 오다가 황갑성 조합장(반포 미도아파트 리모델링조합) 등 타단지 리모델링 조합장들과 의견을 모아 연합회가 발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연합회의 발족 때부터 현재까지 공동대표로서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의 발전적 정착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연합회가 발족한 지 5년 여. 그 사이 처음 18명으로 시작했던 회원수가 60명으로 대폭 증가했고,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변화를 맞이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주택법의 개정으로 ‘수직 증축 리모델링’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이다. 전학수 공동대표를 필두로 한 연합회가 수차례 공청회 및 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정부․국회에 끊임없이 했던 요구가 마침내 지난 4월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과제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의 미래는 밝아 보이기만 했다. 기존 아파트를 3개 층까지 올릴 수 있게 되고, 늘어난 세대를 일반분양할 수 있게 돼 수익성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을 담은 법 개정이 윤곽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개정법이 공포된 후까지 전학수 공동대표는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법의 개정으로 사업이 어떻게 변화가 되는 것이냐”는 조합원들의 문의는 물론이고,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기자 및 리모델링 관계자들의 문의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학수 공동대표는 본인이 조합장으로 있는 대치2단지아파트의 리모델링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준비도 해야 했고, 보다 많은 공동주택 리모델링 단지들이 수직증축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추가적인 법적 보완도 이끌어 내야 했다.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행복한 비명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물론, 세월호 사건 등으로 인한 침울한 사회분위기로 수직증축 리모델링사업이라는 호재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크게 나오진 않았지만,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과거와는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리모델링사업의 좋은 분위기를 단적으로 증명하듯 대치2단지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이 지난 8월 28일 개최한 사업설명회는 500여명에 육박하는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었다.

전학수 공동대표는 이날 설명회에서 전체 면적의 30%를 증가시키는 설계안과 10%를 증가시키는 설계안을 마련해 주민들의 뜻을 물었고, 설명회 현장에서 위와 같은 안의 절충안인 면적 20% 증가에 대한 의견이 나와 오는 9월 30일까지 우편과 팩스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서를 모으기로 했다. 리모델링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수직증축과 관련한 추가 법 개정에 대한 부분 역시 일정 정도 성과를 이끌어 냈다. 국회에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한 끝에 새누리당 윤영석 의원 등 12명의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주택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지난 9월 1일 입법발의 했다. 윤 의원 등은 “지난 4월 시행한 개정 주택법은 기존의 수평․별동 증축 및 세대 분할 증축 리모델링에 더해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을 허용하고 있으나 그 허용 대상을 최대 3개층 이하로서 건축물 신축 당시의 구조도를 보유한 경우로 한정해 단순히 구조도 보유 여부로 안정성을 판단하거나 관리자의 보관 부실로 인한 분실로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을 불허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판단된다”고 제안사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수직증축형 리모델링 대상 건축물의 구조도가 없는 경우에도 안전진단전문기관 등의 안전성을 확인해 수직증축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전학수 공동대표와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이 이와 같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만난 거대한 암초가 바로 정부가 발표한 9․1 부동산대책이다. 무엇보다 재건축연한을 최장 30년으로 단축한 것이 큰 타격이었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주민들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전학수 공동대표는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부터 ‘리모델링을 진행하기 보다는 7년만 더 기다렸다가 재건축을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민들의 문의가 폭주했다”며 “어쩔 수 없이 리모델링사업 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의견서에 재건축사업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함께 담아서 받기로 했다”고 말한다.

또한 전 공동대표는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단지들이 준공 후 20년이 넘은 아파트들인 만큼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우리 조합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리모델링조합이 만나게 된 현실”이라며 “갑작스러운 재건축연한의 단축으로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이 또 다시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조합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리모델링 연한이 줄어든 만큼 리모델링을 포기하고 재건축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단지나 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더욱 나은 선택인 것 아니냐’고 물어옵니다. 하지만 이는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각 단지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전학수 공동대표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재건축사업을 하자”는 의견을 들을 때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재건축사업과 리모델링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답답함의 원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재건축을 하면 무조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리모델링사업은 재건축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분명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전학수 공동대표는 “리모델링은 재건축을 할 수 없어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수익을 얻기 위한 사업도 아닌 노후된 주택을 개량해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라며 “그동안 수직증축 등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도 보다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업비를 조금이나마 낮춰 주민들의 부담을 줄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전 공동대표는 “현재 리모델링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들은 대부분 고층아파트로서 향후 용적률 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재건축사업이 더욱 사업성이 열악해질 수 있다”며 “리모델링사업을 하는 것보다 재건축사업을 하는 것이 무조건 낫다는 환상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보다 나은 방안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할 때”라고 밝혔다.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로 건설사 등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은 상태에서 사업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정체돼 왔습니다. 그리고, 녹색정책이나 인식 변화에 힘입어 사업기반이 조금씩 마련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정부의 부동산대책으로 크나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책변화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리모델링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고, 주민들이 원한다면 리모델링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때입니다.”

재건축 연한이 단축되고 재건축사업으로의 변화를 주장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전학수 공동대표는 여전히 주민들이 리모델링사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재건축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을 걷어내고,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리모델링은 여전히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 공동대표는 정부가 마련해 줘야할 리모델링 활성화 대책 중 하나로 세금문제의 개선을 꼽는다. 전학수 공동대표는 “현재 리모델링사업은 리모델링 결의에 찬성하지 않은 구분 소유자가 있을 경우 사업추진 주체인 리모델링주택조합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하고 주택 및 투지를 매입해 조합에서 형식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하는 형태로 진행된다”며 “조합이 소유하기 위해 취득한 것이 아니라 사업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주택을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취득하는 형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세특례제한법 상에는 이에 대한 감면규정이 없어 주택 취득분에 대해 세금이 모두 과세되고 있는 실정으로, 이는 사업 진행을 더욱 부담스럽게 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금개선, 행위허가를 위한 동의율의 완화 등 여러 가지 활성화 방안이 나와 리모델링이 해볼 만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예정”이라는 전학수 공동대표의 다짐이 공동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또 한 번 훈풍을 불러올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도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