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먹거리 풍부한 1박2일 최고 여행지

한하늘 / 자유기고가

 

군산(群山)은 참 묘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학생들의 단골 수학여행지인 경주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관광지로서의 경주가 화려한 신사동 가로수길이라면, 군산은 황학동 풍물시장의 조촐함이라고나 할까.

신라 천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주는 보이는 곳 모두가 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창시절 역사교과서에서 배웠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반면, 군산은 근대와 현대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고층건물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고즈넉하면서 묘한 안온함을 준다.

특히 경주의 볼거리가 화려한 역사의 한 장면인데 비해 군산의 근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던 곳. 군산과 김제 일대의 드넓은 평야지대에서 생산된 곡식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주무대도 김제와 군산 일대이다. 군산은 가슴 아픈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밀어버리기보다는 ‘보존’을 통해 후대에 교훈으로 남겨주는 길을 택했다.

군산의 이런 시도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군산 어디를 가든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수탈의 기지로 발달했던 항구도시 군산이 현대에 접어들면서 도시의 기능을 잃어가다가 이젠 ‘시간여행’의 명소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만금방조제라는 거대한 사업과 함께 중공업 집약적인 산업단지로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군산을 간 것은 순전히 변덕 때문이었다. 더위에 지쳐가던 어느 날, 하루 이틀의 짧은 여행을 계획하다가 ‘여름이면 바다, 바다면 강원도’라는 틀에 박힌 공식을 떠올리며 동해바다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은 꼭 동해바다를 보고는 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불현듯 군산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귀농한 지인이 군산에 살고 있다는 것도 군산행 결심에 보탬이 됐다.

아무런 준비나 계획도 없이 느지막하게 떠나다보니 저녁 늦은 무렵이었다. 서둘러 숙소를 잡고 군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횟집에서 저녁 겸 술 한 잔을 한 후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숙소에 들어와서야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군산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대충 챙긴 후 내일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리다 잠이 들었다.

아침, 지인과의 술자리가 남긴 속 쓰림을 검색을 통해 찾은 맛집인 B식당의 짬뽕으로 달래기로 했다. 오전 10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수십 명 줄을 서있다. ‘줄을 서면서까지 먹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군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에 기다리기로 했다. 줄을 선 이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외지인들. 근 1시간을 기다렸다 맛을 봤는데, 해산물이 풍성하게 들어갔다는 것을 빼면 과연 기다렸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서 보니 어느새 줄은 훨씬 더 길어져 있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라고 묻는 이에게 “1시간 정도 기다렸다”고 친절하게 답하고 돌아서서 생각하니 ‘지금은 훨씬 더 기다려야 할 텐데’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지만, ‘그래, 군산에 왔으니 좀 기다리는 게 뭐 대수겠어’ 하며 다시 알려주길 접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군산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에 하나가 신흥동 일본식 가옥인 ‘히로쓰가옥’이다. 일제 강점기에 군산지역에서 상업으로 부를 이룬 일본인 히로쓰(廣津)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식 가옥이다. 근세 일본 무가(武家) 형식의 대규모 목조주택으로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활용되면서 유명해졌다.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8월 15일. 광복절에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군산에서 일본식 가옥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 같은 감정은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에서 더욱 진해졌다.

동국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500여 개가 있었다고 알려진 국내의 일본식 사찰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들 중 하나. 흔히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는 ‘건축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사찰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줘야 할 사찰에 들어서면서 한 세기 전에 일본 승려들에 의해서 지어진 절에, 그것도 광복절 날에 들어가자니 ‘히로쓰 가옥’에 들어섰을 때보다 착잡했다. 그나마 종각 옆에 일본 승려들이 종교인으로서 속죄의 의미를 담아 세운 사죄비석이 마음을 달래주지만, 여전히 군국주의 일본을 그리워하는 요즘 아베 내각의 모습 때문인지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다.

심란한 마음에 더위까지 겹치니 시원한 커피 생각이 절로 들어 군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은 M카페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미즈상사’의 건물을 이전 및 복원해서 카페로 만든 곳이다. 건물 내외부 모두가 특색이 있어 커피를 즐기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2층까지 슬쩍 구경을 갔다 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M카페가 위치한 일대는 볼거리가 다닥다닥 붙어있다시피 해 관광객들도 발걸음을 늦추고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는 지역. M카페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舊 군산세관 본관,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진포해양공원 등과 함께 ‘군산근대역사벨트 스탬프투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군산 시내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하고 이국적인 곳이 바로 이 일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다.

이 일대 여덟 곳의 스탬프투어 장소를 모두 돌아본 후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방조제로 향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이라는 새만금간척사업은 전체 사업비가 24조 원에 달한다는 세계 최대의 방조제 건설 사업이다. 4만 100㏊로 여의도 면적의 140배가 넘는 바다가 국토로 바뀌는 것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 사업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채 단계적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2020년이나 되어야 끝날 예정이다. 군산과 부안을 잇는 방조제를 따라 만경평야와 김제를 일컫던 금만평야를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로 ‘새만금’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80년대 시작된 사업은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단체 중심의 사회 반대여론으로 수없는 사업의 중단과 진행을 반복해오다 2006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물막이 공사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였다. 무릇 ‘개척’이나 ‘개발’은 ‘파괴’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민에게는 생계의 수단이고 물의 오염을 막는 필터 역할을 하던 갯벌들이 새만금으로 인해 사라졌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겐 눈물이 되었던 그 새만금으로 가는 길은 ‘바다를 가르는 길’ 그 자체다. 새만금 방조제는 김제와 부안, 군산에 걸쳐 33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이다. 이전까지 세계 최장의 방조제였던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km)보다 500m가 더 길다. 시원스레 뚫린 이 길을 달리노라면 중간 중간 갓길에 차를 세우고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뿌듯함과 서글픔이 묘하게 교차하는 감정을 맛보며 이번 군산여행의 마지막 여정지인 ‘은파호수공원’으로 다시 발을 돌렸다. 이곳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고 북적거린다. 야경이 아름답다는 것이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 해질녘 물결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은파’라 불리는 이곳은 조선조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이 지역에 내려오는 설화를 배경으로 형상화한 국내 유일의 보도현수교인 물빛다리와 오색찬란한 음악분수와 함께 빼어난 야경을 연출하여 찾는 이들에의 탄성을 자아낸다. 매년 봄에는 6.5km에 달하는 벚꽃 산책로를 걸을 수 있고, 인라인스케이트장, 수변무대, 연꽃자생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조성되면서 군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전국 100대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다.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고, 세상을 놀라게 한 간척사업과 그로 인한 눈물과 한숨, 개발과 보존이 공존하는 곳이 군산이다. 겨우 하루 남짓의 짧은 여정에 어찌 군산을 다 볼 수 있으랴만, 가을이 깊어갈 즈음 금강하구의 철새들을 감상하러 또 한 번 들리자는 핑계를 대며 아쉬움을 접고 각박한 도시,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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