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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지명 이야기] ‘칠대어향’ 인천
도시정비 | 승인 2021.04.22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문 도시, 인천광역시.

인천시는 지난 1899년 처음으로 경인선 철도가 개통된 이래 수도권 전철과의 연결, 서울‧수원과 연결되는 고속국도 및 국도의 발달 등 도로 교통의 요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또한 인천항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물류 해운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은 동북아시아의 중추 공항으로 비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천(仁川)이라는 지명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인천의 최초 명칭은 ‘미추홀(彌鄒忽)’에서 시작된다. ‘삼국사기’에 “졸본 부여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 형제가 남하해 형 비류는 미추홀에서 도읍했다”고 전해진다.

인천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 장수왕 때(475년)로, 당시의 이름은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경덕왕 때 한자식으로 바꿔 소성현(召城縣)이 됐고, 고려 숙종(1095~1105년) 때 숙종 어머니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됐으며, 고려 인종(1122~1146년)때에는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또 한 번 승격됐다.

특히, 고려시대 인천은 ‘인주 이씨’ 출신의 왕비를 무려 7대(문종~인종)에 걸쳐 배출한 왕실의 고향이었다.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 ‘이자겸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한 때 몰락하기도 했지만,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2년(1390년)에 이르러 인천은 다시 경원부로 환원됐다.

한편, 인천은 조선 태조 원년(1292) 경원부에서 인주로 강등됐다가 태종 13년(14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 명을 산(山) 또는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하도록 하면서 현재의 ‘인천’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인천시민의 날’도 이 날(1413년 10월 15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후 1895년 지방제도개혁에 따라 인천부가 설치됐으며, 1903년 인천군으로 강등됐다가 1910년 다시 인천부로 환원됐고, 1981년 인천직할시 시대를 거쳐 1995년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을 편입해 광역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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