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협 “업무연속성 인정만으로도 의미 있는 판결”

추진위원회 선정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정비회사)의 조합 승계를 인정하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이나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의 입장과는 상반된 판결이다.

법제처는 추진위원회 선정 정비회사의 업무범위에 대해 지난 2019년 9월 6일 “추진위원회는 조합의 업무범위에 속하는 업무를 정비회사에 위탁하거나 자문을 구할 수 없다”면서 “조합의 업무범위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조합이 총회의 의결을 거쳐 정비회사를 선정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고 유권해석한 바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운영규정에 추진위원회 단계 정비회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므로, 해당 업무범위를 초과해 선정된 정비회사는 조합에 승계되지 않는다”면서도 설계사와 관련해서는 “설계 업무의 특성상 정비사업 전반에 걸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추진위에서 선정한 설계자의 업무범위를 추진위원회 단계로 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서울시에 회신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 내 자치구에서는 관할 내 정비사업 현장에 ‘국토교통부 유권해석(질의회신) 안내 및 관련규정 준수 철저요청’이라는 제하의 공문을 통해 위와 같은 유권해석 내용을 발췌해 밝히고 “각 추진위원회에서는 위 유권해석 내용 및 법제처 법령해석을 참고해 추진위원회의 업무추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법제처 유권해석 등은 이후 수많은 현장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왔다. 명확한 법률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각 정비사업 현장의 현실과는 다른 형식적인 자구해석이 나와 문제가 됐던 것. 하급심이기는 하지만 이번 판결은 유권해석 이후 최초의 유의미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판결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진위의 업무범위에 정비회사 선정 및 계약체결이 포함되는지와 이 계약이 조합에 승계되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추진위의 업무 범위 중 정비회사 선정을 유효하다고 봤고, 입찰절차를 거쳤다면 조합설립인가 전에 계약을 했더라도 유효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계약에 추진위 업무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이 일부 포함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계약 무효라 볼 수 없으며, 설령 무효라고 보더라도 이는 설립인가를 받은 조합에 포괄 승계된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비사업 전문변호사들은 법제처의 유권해석 등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었다. 한국도시정비협회 또한 관련 전문가 및 현장의 의견을 모아 “추진위 선정 정비회사의 업무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국토교통부 등에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고원 김수환 파트너변호사는 “조합원 총회에서 추인 결의를 하는 이상 유효하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이와 관련해 법원 역시 일관되게 ‘추진위원회 당시 선정한 정비회사, 설계자를 조합원 총회에서 추인 결의하는 경우 조합의 업체 선정은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무법인 산하 이재현 수석변호사 역시 “추진위원회와 조합은 업무를 분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입법과 사법적으로 모두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하나의 법률적 주체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며 “추진위원회는 조합의 사전과정이고, 조합과 분리해 독립된 의미를 갖는 단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률상 추진위원회와 조합이 구분돼 있다거나 각 의결의 대표성 등을 이유로 하여 기계적으로 정비회사의 업무기간을 구분하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도시정비협회 고문변호사인 김래현 변호사(법무법인 현 파트너변호사)도 “정비사업의 투명성 제고를 강조하기 위해 업무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저해하는 수단을 택한 것”이라면서 “더욱이 그 수단이 정비사업의 투명성 제고에 일조하는지 조차 불분명한 점을 고려하면, 법제처 등의 해석은 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 제1호를 부당히 축소해석 한 것으로서 입법자의 입법의도를 왜곡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은 “유권해석 자체가 법적인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자체의 업무방향이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면서 서울시는 물론, 전국 수많은 현장에 혼란이 거듭됐었다”면서 “이번 판결은 추진위원회와 조합의 업무연속성을 인정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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