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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지명이야기] 빛고을 광주(光州)
도시정비 | 승인 2021.06.25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에 이어 국내에서 제6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 호남지방 최대의 도시. 바로 광주광역시다.

광주는 우리나라 서남권 산업경제의 중심지로, 특히 나주와 담양, 화순, 함평, 장성 등 인접 시·군과 ‘빛고을 중추도시생활권’을 구성해 중추업무, 교육 및 과학기술, 첨단산업, 문화, 서비스 기능 등의 연계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삼국사기지리지’에는 “노지였다가 주진주(무들골)와 무주를 거쳐 940년(고려 태조 23년) 처음 광주(光州)라고 칭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후백제 견훤 때부터 광주라 불렀으며, 현의 남쪽 2리에 있는 석서정 기에 이색이 ‘광지주(光之州)’라 언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1980년대부터 별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빛고을’은 위와 같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 유래했다.

한편, 광주 지역에 국가단위 사회가 발생한 시기는 마한시대로 추측된다. ‘위지동이전한조(魏誌東夷傳韓條)’에 따르면, 마한지역 중 광주와 관련해서는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과 불미지국(不彌支國)을 들 수 있는데 구사오단국은 장성군 진원면 일대로, 불미지국은 나주일대로 보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지리지에 따르면, 삼국시대 백제의 군현은 모두 147개소이고 전남지역의 군현은 중‧동‧남‧서‧북 오방의 하나인 남장에 속했는데, 이 무렵 광주지역은 무진주(武珍州)라 불렸다.

이외에도 광주 지역은 고려시대 전까지 무진주 혹은 무주(武州)로 불렸으며,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광주로 개편됐고, 해양현, 화평부, 무진부 등을 거쳤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새로운 지방제도에 따라 광주에 읍장을 뒀는데, 그 당시 광주는 성벽안을 성내면이라 했고, 성외에 기례방‧공수방‧부동방의 3방이 있었기 때문에 1면 3방을 합병해 ‘광주면’이라 호칭했다.

1931년 4월 1일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광주읍으로 승격됐다가 1935년에는 다시 부정(府政)을 실시해 ‘광주부’로 명명됐고,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광주부는 1949년 ‘광주시’로 바뀌었다.

이후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설치에 관한 법률’이 공포돼 전라남도에서 분리, 부산‧대구‧인천에 이어 네 번째로 직할시로 승격됐으며, 1988년 1월 1일 송정시와 광산군 전역이 광주직할시에 편입된 데 이어 1995년 지금의 광주광역시로 거듭났다. 

 

도시정비  krcma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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