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늘 / 자유기고가

 

올해부터는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됐다. 휴일이 늘어서가 아니라, 한글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한글날은 마땅히 국가적으로 기념해야 하는 날이어야 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국적불명의 말들과 줄임말, 비속어 등이 바른말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의 말글살이 중에서 가장 흔하게 범하는 오류가 한자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 발생한다. 흔하게 드는 비유가 “역전 앞에서 만나자”이다. 그냥 역 앞이라고 하면 될 것을 역전(驛前) 앞이라고 함으로써 ‘역 앞 앞’이라는 이상한 말이 되는 것이다. 말이야 대충 통할지라도 올바른 말글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월의 첫날은 국군의 날이다. 이때는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여하곤 하는데, TV뉴스나 신문에서 “대통령이 장병들의 사열을 받고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보도하곤 한다. 그런데, 사열(査閱)이란 ‘검열이나 조사를 위해 실지로 하나하나 살펴봄’을 말한다. 즉, 윗사람은 사열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열을 하는 것이고, 사열을 받는 것은 장병들이다.

“접수 받는다”는 말도 흔하게 하는 실수이다. 접수(接受)는 ‘신청이나 신고 따위를 구두나 문서로 받음’을 뜻하니, 이미 접수라는 말 자체에 받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접수 받았다”고 한다면 ‘받는 것을 받았다’는 것이니 ‘역전 앞’과 다를 바 없는 오류이다. 따라서 이때는 ‘접수했다’고 해야 한다.

또, “서류를 접수하고 왔다”고 하는 말도 옳지 못한 표현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접수는 서류 등을 받는 사람 쪽에서 사용하는 말이지 제출하는 사람이 쓰는 말은 아니다. 이럴 때는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고 표현해야 한다.

이처럼 한자의 뜻을 몰라서 실수하기도 하지만, 아예 한자어인지 조차 몰라 실수하는 경우도 많다. “그 사람은 참 쑥맥이야”라고 할 때의 ‘쑥맥’이 그렇다. ‘쑥맥’은 우리말이 아니라 콩과 보리를 뜻하는 ‘숙맥(菽麥)’이라는 한자어이다. 콩과 보리를 구별 못할 정도로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을 줄여서 ‘숙맥’이라고 하는 것이다.

“저렇게 공부 안 하다가는 재수하기 쉽상이지”라고 할 때처럼 ‘쉽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 또한 바른 말은 ‘십상’이다. ‘십상’은 ‘십중팔구’와 같은 뜻인 ‘십상팔구(十常八九)’의 준말이다. 실수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우리말의 ‘쉽다’에서 온 것으로 착각, ‘쉽상’이라는 국적불명의 말로 쓰고 있는 셈이다.

우리말의 상당수가 한자어이고, 또 여러 나라의 말들이 어우러지면서 사용되고 있는 세계화 시대인 지금, 우리말만 고집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우리말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또 순화할 수 있는 말은 순화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뜻도 모른 채 한자어를 남발하면서 잘못 쓰는 것은 바로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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