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두면 잘되는 사업, 억지로 안 되게’ 하는 공공 유도 지양해야

공공주도 도심 주택공급의 한계를 지적하는 학계의 지적이 또 한 번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7월 19일 발간한 건설동향브리핑을 통해 “2018년 9.21 대책(3기 신도시 포함 서울 외곽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 2020년 5.6 대책(공공재개발, 도심 내 유휴 국공유지)과 8.4대책(공공재건축, 도심 내 유휴 국공유지), 올해 2.4대책(도심 내 공공주택복합사업 등) 등 일련의 대책을 통해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을 추진하고 있으나, 최근 곳곳에서 ‘공공’에 대한 거부감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기성시가지 정비사업에 있어 공공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 점차 부각되는 공공 ‘주도’에 대한 거부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태희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공공이 주도하거나 공동 시행하는 기성시가지 개선사업에서 사업시행 방식과 관련한 주민 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부 구역의 경우 민간 시행 방식으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공’ 시행으로 인한 자율성 침해와 공공임대주택 증가에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공 재개발사업의 경우 전반적으로 호응이 상당히 좋았지만, 사업이 구체화 될수록 갈등이 가시화되는 곳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최대어라 불리는 흑석2구역을 포함해 강북5구역, 상계3구역 등에서 사업 시행에 공공이 개입하는 것과 높은 공공임대주택 비율에 대한 거부감으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또한 공공 재건축사업의 경우 현재의 조건으로는 목표로 한 ‘5만호 공급 달성’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됐던 대단지들이 모두 제외됐고, 5개 중․소규모 단지만 선도사업으로 추진되고 실정인데다가, 그나마 가장 큰 규모인 관악 미성건영이 사업을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편, 2.4 대책에서 제시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자치구가 제안한 구역 중 5차에 걸쳐 총 52곳이 후보지로 선정됐고, 이 중 지난 6월 23일을 기준 10% 이상의 동의율을 확보해 예정지구 지정요건을 갖춘 곳은 21곳, 2/3 이상 동의율을 확보해 본지구 지정요건을 충족한 곳은 4곳이다.

하지만, 부산 전포3구역에서는 민간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던 주민들이 지정 철회를 요청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업 추진이 본격화되면 여러 후보지에서 ▲사업수단 ▲2.4 대책에서 보장하기로 한 ‘초과수익’의 산정 방식 및 액수 ▲단지 고급화 정도 및 비용분담 주체 ▲세입자 대책 등 다양한 이슈와 관련해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다수의 도심 내 유휴 공공택지 개발사업도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는데, 이는 해당 토지의 활용 용도에 대한 이견과 더불어 특히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대한 거부감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외에도 5.6 대책에서 발표한 용산 정비창 개발사업은 토지의 주활용 용도와 관련해 서울시와의 이견으로 당초 계획 보다 사업 추진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고, 한국교육개발원 부지 역시 개발 방향에 대한 서초구와의 갈등으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또한 8.4 대책에서 제시한 태릉골프장, 정부 과천청사 부지, 캠프킴, LH 여의도 부지, 상암 DMC 미매각부지, 국립외교원 등도 공공(임대)주택 중심의 개발계획에 대해 주민과 지자체의 반대로 계획이 변경되거나 사업 추진이 연기되고 있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3기 신도시를 포함한 대규모 택지개발 지구 역시 ‘LH 사태’ 이후 공공에 대한 신뢰 하락 및 기관의 추동력 저하로 토지보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의 경우 일각에서 분양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주장은 ‘공공’주택이기에 제시 금액보다 가격이 낮아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분양가 문제는 향후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2.4 대책)을 통해 공급되는 공공주택에 대해서도 유사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가 있다.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면 그만큼 기존 토지주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들고, 토지주들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초 사업 추진에 동의하는 토지주의 동의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공공 시행만이 능사 아니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또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기성시가지 내 주택공급은 기본적으로 나대지에서 시행하는 택지조성 사업과 접근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기성시가지 내 주택공급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공공에 대한 거부감을 단지 ‘부도덕한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한다면 문제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성시가지에서 민간 토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은 다수 토지등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사업이 추진될 수 없고, 기본적으로 절대 다수의 토지등소유자들은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공공임대주택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현실인데, 이를 단지 부도덕한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이해하는 것을 민관 협력을 통한 주택공급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태희 부연구위원의 생각이다.

한편, 공공 시행 정비사업이 민간 시행에 비해 사업속도나 품질 등 사업 전반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힘들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오히려 비교 열위인 경우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일례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지난 2007년부터 단독으로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세운4구역의 경우 우여곡절을 거치며 최종 인허가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관리처분계획 인가까지 받았으나, 아직도 토지보상 및 세입자 대책과 관련해 소유자 및 세입자 모두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반면, 맞은편 민간이 시행 중인 세운3구역은 을지면옥 보존 여부를 둘러싼 갈등을 매듭짓고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점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2000년대 시작했던 다수의 공공주도 재개발사업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사업성 부족으로 인해 장기간 중단했거나 포기했던 경험이 있는 점(상당수 사업은 부동산 시장 상황이 개선된 후 재개돼 최근 완공을 앞두고 있거나 완공됨) 등을 지적하고 “이러한 사례는 공공 시행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즉, 공공이 진행 한다고 해서 민간 시행과 비교해 반드시 더 ‘빠르고, 잘, 정의롭게’ 한다고 말하기 힘들다”면서 “여기에 더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연관된 경우 공공 시행 시 오히려 갈등 해결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흑묘백묘’ 지혜 되새겨야

최근 노형욱 국토교통부장관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서울시와의 주택공급 협력방안을 묻는 질문에 “흑묘백묘(黑猫白猫)라는 말처럼 사업성이 있고 민간이 잘하는 부분은 민간이 맡고,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주민간 의견 합치가 되지 않는 곳에선 공공이 개발을 이끌면 된다”고 답한 바 있다. ‘흑묘백묘’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추진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정비사업에서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공공이 시행해야 할 필요는 없다. 흑석11구역 등 ‘도시․건축 혁신’ 시범사업에서 볼 수 있듯 시행 예정인 정비계획 수립 시 ‘공공기획’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이루는 방향의 사업 추진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지금까지 일부 재건축사업에서와 같이 ‘놔두면 잘되는 사업을 억지로 안 되게’ 하여 공공 재건축사업으로 유도하거나, 공공 재개발사업에만 통합심의, 종 상향 등의 특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공공 시행 방식으로 유도해 가는 것이 아닌, 민간 시행 방식으로 잘 안 되는 사업을 공공이 개입해 잘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의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또 “수익을 극대화하고 싶고, 임대주택 공급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토지주들의 이기심을 죄악시 하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이를 오히려 활용하는 방향의 지혜로운 정책 설계를 기대한다”며 “예를 들어 소유자들의 거부감이 큰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반강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닌,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소유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이 낮은 소득 분위를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을 공급할 시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 사업시행자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의 종류와 양을 인센티브와 연계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이 같은 브리핑에 대해 정비업계는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정비사업을 규제해왔는데, 이런 규제만 완화하더라도 주택공급에 큰 보탬이 됐을 것”이라며 “정비사업에 대해 공공은 ‘주도’가 아니라 ‘지원’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은 “2.4대책과 관련한 공공 직접시행방식의 정비사업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정부의 기대와 달리 매우 차갑다. 현장발굴 자체가 거의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어렵게 발굴한 현장에 대해서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공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 어려운 현장이기 때문에 공공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인데, 막상 이런 현장에 대해서는 참여를 하지 않으니 현장 발굴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다. 현실에 바탕을 둔 공급대책이 필요한 때”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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