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도 ‘전자투표’를 활용한 비대면 총회가 가능해진다.

국회는 지난 7월 24일 열린 본회의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원안대로 가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정부와 조응천 의원, 장경태 의원 등이 발의한 6개 법률 개정안을 합쳐 국토교통위원회 대안으로 상정됐었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전자투표제도’ 도입이다. 이번 개정을 통해 도시정비법 제45조(총회의 의결) 제8항이 “제5항에도 불구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에 따른 재난의 발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해 시장‧군수 등이 조합원의 직접 출석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전자적 방법(‘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정보처리시스템을 사용하거나 그 밖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는 방법을 말한다)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족수를 산정할 때에는 직접 출석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으로 신설됐다.

전자투표제도 도입에 대해 정비업계는 “도시정비법이 개정될 때마다 또 무슨 규제가 신설됐나 노심초사했던 것에 비하면 현실을 반영한 거의 처음인 법률 개정”이라며 환영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는 국민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정비사업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도시정비법에서는 각 안건에 따라 총회의 직접참석 비율을 정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안건을 다루는 총회라고 해도 전체 조합원의 10% 이상이 직접 참석해야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창립총회, 사업시행계획서의 작성 및 변경, 관리처분계획의 수립 및 변경을 의결하는 총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총회의 경우에는 직접참석비율이 최소 20% 이상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수백명에서 1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직접 참석해야만 유효한 총회가 되는 셈인데, 코로로 사태 이전에도 조합원들의 직접참석을 독려하기 위해 조합마다 참석수당 지급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총회 개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 초기만 하더라도 거리두기가 가능한 야외총회, 드라이브 인 스루 총회 등 묘책을 발휘해 총회를 열기도 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집합금지 조치 및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조합원들의 참석률 저하로 총회 개최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실제로 일선 사업장에서는 코로나 상황이 다소 진정되길 기다리며 총회 일정을 미루거나 안건처리가 시급한 사업장의 경우 강행 여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곤 했다. 사업단계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총회를 미룰 경우 사업기간 및 금융비용 증가에 따른 조합원 분담금 상승이 불가피하고, 강행할 경우 혹시라도 코로나 감염이 발생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비업계에서는 지난 2월 주택법 개정을 통해 전자투표제도가 도입된 리모델링조합이나 지역주택조합처럼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에도 전자투표제도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정비사업조합은 기존의 ‘직접 출석, 서면결의서 제출, 대리인을 통한 의결권 행사’의 3가지 방법 외에 코로나19 등 재난에 해당하는 경우 ‘전자투표’를 의결권의 행사 방법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게 됐고, 특히 전자투표의 경우 ‘현장 출석’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직접참석 요건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전자투표제도 도입 일단 환영
효과 보려면 보완책 뒤따라야

 

한편, 정비사업 전문가들은 전자투표제도 도입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세부적인 보완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려되는 사항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직접 출석 요건을 둔 도시정비법의 취지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도시정비법에 따른 조합원 총회에서 직접 출석은 ‘일반 총회의 경우 10%’, ‘창립총회, 사업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수립 총회 등 중요한 총회의 경우 20%’, ‘시공자 선정 총회의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총회의 중요도에 따라 OS(홍보요원) 등의 방문으로 조합원의 의결권을 왜곡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개정안대로 전자투표 제도를 아무런 구분 없이 허용하게 되는 경우 위와 같은 홍보요원(시공사가 투입한 홍보요원 포함)의 방문으로 조합원들의 의사가 왜곡돼 직접 출석 제도의 도입 취지를 잠탈(潛脫 : 규제나 제도 따위에서 교묘히 빠져나감)할 우려가 존재한다.둘째, 전자투표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제도 부재다.

전자투표의 경우 전자투표 업체의 신뢰도에 따라 의결권의 진의 여부가 결정되므로(결과의 조작 등 가능성 배제할 수 없음), 이에 대한 감독 기구 또는 자격(등록)에 관한 제도 도입, 위반시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 도입 등 관리·감독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법 개정 이전에 리모델링조합이나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해 운영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큰 문제점은 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온라인 프로그램의 기술적 하자로 인해 적법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며, 이로 인해 잠재적 분쟁의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법원(서울북부지방법원)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조합의 총회금지가처분 사건에서 “전자적 의결방법은 조합이 안내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조합원 성명’ 및 ‘전화번호’와 초기 비밀번호로 조합원의 생년월일을 입력하도록 돼 있는데, 간단한 개인정보만으로 타인에 의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 공신력 있는 본인 확인 방법으로 볼 수 있고, 이미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의결이 이뤄졌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도 존재한다”는 등의 이유로 조합원발의총회의 개최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전자투표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개별 전자투표업체가 아니라 공신력 있는 기관(공공 또는 공공이 지정한 단체 등)이 전자투표 플랫폼을 개발․운영하는 방식 등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총회 이후 의결권 행사가 진정하게 이뤄졌는지 여부(서면결의의 경우에도 서면결의서의 진위 및 조합원의 직접적인 의사가 반영됐는지 여부 등을 놓고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도 우려되는 사항이다.

기존 서면결의서는 법원 재판 절차를 통해 필적 대조 등으로 확인할 수라도 있지만, 전자투표의 경우 이런 진위 여부 파악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사후 진위 여부 파악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한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고, 기술적으로 미흡한 경우 하루라도 빨리 보완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고령자 등 휴대전화 조작 미숙자들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전자투표의 경우 ‘고령자’ 등 휴대전화 미숙자들에 대해서는 의결절차에의 참여를 사실상 배제하게 됨으로써 ‘1 조합원 1 의결권’이라는 도시정비법의 의결권에 관한 대원칙이 훼손될 가능성 있다. 전자투표를 하게 되는 경우 청․장년층에게 유리한 의결안을 상정해 집중적인 의결 유도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반대로 홍보요원이 활동하는 경우 홍보요원이 대신 조작하게 함으로써 위 휴대전화 조작 미숙자들의 의결권을 왜곡할 우려도 다분하다. 직접참석 요건 충족에는 도움이 되지만, 서면결의서를 둘러싼 논쟁은 그대로인 셈이다.

이런 우려를 감안할 때 직접참석 10%를 요구하는 일반 안건 외 창립총회, 사업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수립 총회, 시공자 선정 총회 등 도시정비법 및 정비사업계약업무처리기준이 특별히 직접 출석 요건을 강화한 총회의 경우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전자투표제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해 시장‧군수 등이 조합원의 직접 출석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돼 있는데, 도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재난상황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투표제도가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3개월 유예기간(8월 10일 개정 공포, 11월 11일부터 시행)동안 우려되는 사항을 보완하는 후속 조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 기사 작성에 도움을 준 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 법무법인(유한) 현 김래현 변호사, 법무법인 고원 김수환 변호사에게 감사드립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도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