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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돌담길 함께 걸어요!숨은 골목에서 시작하는 종로 역사여행
도시정비 | 승인 2021.11.22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은 사대문 안에 속한 지역을 뜻하고, 그중에서도 종로는 한성부의 중심이었다. 근대화 과정을 거친 현재의 서울에서도 종로는 광화문 일대로 불리면서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은 서울의 대표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종로구의 숨은 명소들을 추천한다. 조선시대 순라순들이 직접 들려주는 ‘순라군 해설프로그램’부터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이 절충된 한옥을 구경하면서 우리의 멋과 전통에 대해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순라길, 순라군 해설 프로그램

순라길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종로구는 11월부터 ‘순라길, 순라군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순라군 복식을 갖춰 입은 해설사와 함께 창덕궁과 종묘로 이어진 사잇길을 걷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순라군은 야간에 화재와 도둑을 막기 위해 3~5명씩 조를 편성, 한양을 돌며 순찰했던 경찰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태종 때 거리에 도둑이 많아 백성들을 지키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태종의 아들인 세종대왕이 황희 정승에게 “한양에 도둑이 많으니 경수소 훈련을 강화하라”고 명했다는 기록도 있다. 경수소는 지금의 경찰지구대나 파출소를 떠올리면 된다. 세조에 이르러 한양에 106개의 경수소를 설치했다고 하니 꽤 큰 규모로 순라군이 운영됐음을 알 수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해설사를 만나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앞에서부터 본격적인 해설 코스가 시작된다.

돈화문 앞길은 임금이 백성을 살피던 ‘어도’로 이 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전이 들어섰다. 북촌에는 양반이, 서촌에는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면 돈화문 앞쪽에는 궁이나 종묘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악을 연주하던 음악가들이 많이 살았다. 그 명맥이 이어져 아직도 국악학원, 악기사, 한복집 등이 운집해있다.

돈화문로를 따라가다 보면 우측에는 익선동이, 좌측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 단성사가 나타난다. 단성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종로3가역 앞에 있는 금은방 거리를 통해 종묘로 간다. 종묘 서쪽으로 이어지는 담장을 따라 난 서순라길을 걸어 대각사로 향한다.

대각사는 1931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재산 몰수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독립운동의 성지로, 해방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했을 때 환영회가 마련됐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대각사를 둘러본 후 서순라길을 따라 돈화문 앞에 있던 국악당으로 돌아오면 해설 프로그램이 마무리된다. 

  ※ 순라길 해설 프로그램

  - 해설사프로그램 : 월~금 10:00~12:00, 14:00~16:00 하루 2회 무료 운영(종로구 홈페이지를 통해 상시 모집, 3명 이상 시 해설사 배정 가능)

  - 코스 : 창덕궁 돈화문 앞(우리소리박물관)->돈화문로->단성사->종로3가역->종묘->서순라길->대각사->돈화문국악당

  - 문의 : 02-2148-1852

 

◇ 종로3가역 – 서순라길

종묘의 담장과 한옥의 조화가 돋보이는 ‘서순라길’

최근 종묘 서쪽 담장을 따라 걷는 서순라길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지도상으로는 종묘가 궁궐 오른쪽에 위치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궁궐에서 왕이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을 중심으로 좌묘우사(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단)를 뒀기에 서순라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종묘 서쪽에 있는 길이라는 이유로 서순라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서순라길 주변 건물들은 종묘 담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높이가 2층으로 제한돼 있기에 담벼락과 조화로운 경관이 장관을 이룬다. 아직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서울의 다른 명소에 비해 비교적 거리도 한산하다. 

  ※ 서순라길 찾아가는 법

  - 1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종묘로 도보 이동. 서쪽 담장을 따라 골목길부터 서순라길 시작.

 

◇ 서울공예박물관

풍문여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서울공예박물관 모습.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서울공예박물관은 지난 7월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으로, 2만여점의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특히, 서울공예박물관은 공예의 역사, 현대적 공예, 지역별 공예품, 어린이공예, 공예 도서관 등으로 조성된 공간을 통해 공예의 전통과 현대, 예술과 생활을 연결한다. 박물관이 들어선 장소는 과거 세종대왕의 아들인 영응대군의 집터로 알려져 있다.

조선 말에는 마지막 왕인 순종의 혼례를 위해 이곳에 안동별궁을 만들었다. 별궁은 왕실의 가례 준비를 위한 장소로 활용되다가 이후 풍문여고가 들어섰고, 70여년간 학교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시민들을 위한 공예박물관으로 재탄생 됐다.

상설 전시는 장인의 기술과 전통 공예품에 관한 이야기부터 조선 말 근대화 속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예 역사 전시’와 다양한 자수와 보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직물 공예 전시’로 진행된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왕실에 쓰인 화려한 공예품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왕비나 세자를 책봉하거나 특별한 시호를 올릴 때 그와 관련된 사실을 기록한 어책, 소뿔을 얇게 저며 각자를 만들고 뒷면에 그림을 그린 후 나무로 만든 표면에 붙여 장식한 화각함은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작품들이다. 더불어 사대부들의 공예품,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으로 변화하는 공예품들까지 다양한 전시물이 이어진다. 

  ※ 서울공예박물관

  -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도보 3분

  - 입장료 : 무료(홈페이지 사전 예약 필수)

  - 운영 시간 : 10:00~18:00(매주 월요일 휴무)

  - 문의 : 서울공예박물관

 

◇ 서울미술관 석파정

석파정. 유수성중관풍루라는 별칭처럼 주변에 짙은 단풍이 가득하다.

석파정은 조선 후기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홍근의 별장이었다. 삼계동이라고 새긴 커다란 바위 아래에 집이 있어 삼계동정사라 불렸는데, 고종이 즉위한 후 이곳의 풍경과 주변 정취에 마음을 빼앗긴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별장으로 삼으면서 그의 호인 석파(石坡)를 따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석파정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서울미술관 통합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1층과 2층에서 전시 관람을 한 후 3층을 통해 야외로 나가면 석파정이 나타난다.

석파정은 본래 8채로 이뤄져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 사랑채, 별채, 석파정만 남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인 별채에 걸터앉으면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계곡에 안긴 듯 자리한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종 황제가 석파정을 찾았을 당시 묵었던 방도 별채에 있다.

별채에서 내려와 짧은 숲길을 따라가면 계곡에 들어앉은 정자인 석파정이 나타난다.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전통 정자와 달리 마루 대신 화강암을 쌓았고, 기와 대신 지붕에 동판을 덮어 청나라풍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 석파정

  - 입장료 : 15,000원(미술관+석파정 통합권)

  - 운영시간 : 미술관 10:00~18:00(매주 월,화 휴무), 석파정은 11:00~17:00 운영.

  - 문의 : 02-395-0100(석파정 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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