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재산권‧자기결정권 침해 과하다”

높아진 문턱으로 신규 재건축단지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가운데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12월 6일 발간한 건설동향브리핑을 통해 “현행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는 부작용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재산권과 자기결정권 침해 과하다”며 위와 같이 밝혔다. 보고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재건축 안전진단제도는?

공동주택 재건축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지난 1987년 ‘주택건설촉진법’에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부터다. 1984년 4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법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시행령이 만들어지지 않아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또한, 공동주택 재건축사업은 처음엔 20년 이상 경과된 노후·불량 공동주택에 대해 재건축사업이 가능하도록 했으나, 1993년 우암상가 붕괴 후 시장·군수·구청장이 인정할 경우 모든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사업추진이 가능해 졌다.

이후 2002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제정(2003년 7월 시행)되고, ‘주택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이하 안전진단 기준)’이 제정되면서 안전진단이 체계화 됐다.

특히,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는 그동안 정권의 정책기조와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큰 변화를 겪어왔다. 일례로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 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기 속에서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하에서는 구조안전에 큰문제가 없다면 ‘주거환경이 극히 열악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데, 특히 현장에서는 적정성 검토와 관련해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적정성검토의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차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비해 많게는 10점 이상이 높게 나와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고덕주공 9차, 태릉우성아파트 등), 관련 전문가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같은 매뉴얼에 따라 평가한 결과가 이렇게 다른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명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적정성 검토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고 약식보고서만 공개되고 있어, 피평가자들이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 데이터를 검증하고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사한 조건의 아파트 사이에서 안전진단 결과가 엇갈리는 사례가 발생하는데(목동 6,9,11단지 등), 여기에 대한 충분한 근거데이터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적정성검사는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도록 돼 있는데, 이로 인해 예산편성을 위한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되고, 지자체의 재정여력과 의지에 따라 지역별로 적정성 검토 의뢰에 대한 차이가 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 현행 안전진단 제도의 문제점

- 주택공급 축소 및 공급축소 우려로 인한 주택시장불안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과 신설된 적정성 검토로 인해 2018년 안전진단 규제 변경 이후 서울에서 적정성 검토까지 통과한 단지는 4개에 그치고 있는 실정(올해 8월 기준)이다. 2015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3년간 서울에서만 총 56개 단지가 최종적으로 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급격하게 줄어든 수준인 것. 특히, 안전진단은 재건축사업의 사실상 첫 관문인데, 대부분의 재건축단지가 안전진단에서 막혀 있어 정비사업의 본궤도로 진입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서울시의 경우 기성시가지 내 신규주택공급의 대부분이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비사업의 한축인 재건축사업의 신규진입이 막혀있는 현재 상황은 중장기적으로 주택공급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급절벽’ 우려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과도한 사유재산권 및 자기결정권 침해

기반시설의 개선·확충, 서민주거환경개선 등을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기에 ‘공익사업’으로 분류되는 재개발사업과는 달리, 재건축사업은 기반시설의 개선·확충의 필요성보다는 기본적으로 노후·불량공동주택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토지등소유자 다수가 자율적 의사결정을 통해 추진된다. 이에 따라 재건축사업은 ‘민간사업’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특정필지에 있는 주택을 소유한 단일소유자가 건축물을 철거후 신축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복수의 구분소유자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집합건축물(공동주택)을 소유자 다수의 동의를 바탕으로 철거 후 신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후‧불량주택을 소유자들이 자율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에 있어, 현 규제는 붕괴위험 등 안전하지 않거나 주거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경우에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는 ‘안전’하거나 주거환경이 극도로 열악하지 않은 공동주택을 재건축하는 것은 “사회적 자원낭비”라고 주장하지만, 개인들이 비용을 부담해 자율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행위를 사회적 자원낭비라는 이유로 국가가 규제하는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원칙을 넘어서지 않는지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즉, 목적은 정당한지, 수단은 적합한지, 자율성의 침해 정도는 지나치지 않은지, 그리고 입법과 정책에 의해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비교 형량할 때 보호되는 공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특히, ‘안전하고 멀쩡한’ 건물도 재건축할 수 있게 하는 안전진단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안전하고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지어 가치를 상승시키는 개발행위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 논현동의 빌딩을 소유했던 한 회사는 해당 빌딩을 리모델링한 직후 매각을 결정했고, 이 건물을 낙찰 받은 부동산개발회사는 주거용도 건물 신축을 위해 ‘안전하고 멀쩡한’ 해당 건물을 철거했다. 이외에도 올해 초 폐업한 특급호텔 등이 철거 후 신축할 예정이다.

이렇게 민간 경제주체들이 소유한 재산의 처분이나 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행위에 대해 정부가 ‘사회적 낭비’라는 이유로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비슷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유사사업과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유사한 목적으로 임대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공공임대 재건축사업의 경우 ‘멀쩡하고 안전한’지 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안전진단 절차 없이 재건축이 가능하다. 또, 비주택건물 또는 준주택(오피스텔 등) 건물을 재건축하는 경우 다수의 구분소유자가 동의(구분소유자의 4/5 이상 및 의결권의 4/5 이상의 결의 확보시)할 경우 집합건물법에 근거해 안전진단 절차 없이 재건축을 할 수 있다.

 

- 어쩔 수없이 추진하는 리모델링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효율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재건축부담금 납부 부담, 과도한 공공기여 요구 등으로 최근 상당수 공동주택단지가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리모델링사업은 기반시설 확충, 임대주택공급, 도시경관개선, 공사비용 절감(고급 ‘재건축급’ 리모델링의 경우), 주거환경개선, 자산가치 상승, 공사비절감효과에 있어 재건축사업에 비해 열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추진되는 고급 ‘재건축급’ 리모델링사업의 공사비는 고급 아파트 재건축 시공비를 넘어서고 있다고 알려졌다.

즉, ‘재건축이 안돼서 어쩔 수없이 리모델링’을 하는 현 상황은 공익과 소유자의 이익 모두에 있어 손해인 ‘사회적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다양한 제도 개선 방향 검토해야

- 새로운 재건축 판정기준 도입(최선안)

단순한 주택의 ‘양’이 아닌 ‘질’이 더욱 중요해진 최근의 주택정책 환경 속에서, 구조적으로 안전한가에 대한 여부에 따라 재건축 추진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시대적 환경변화에 맞지 않다.

따라서 ‘안전’ 중심으로 판단하는 현재의 ‘안전진단’이 아닌 주거환경, 사회적 효용 개선 효과, 안전성여부, 소유자들의 사업추진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재건축사업 추진 가능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준에서는 ‘안전’ 중심의 기존 판정 방식이 아닌, 사회적 효용과 소유자들의 선택권을 더욱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재건축 가능여부 판정체계가 바뀔 필요가 있다.

 

- 기존안전진단 제도 합리화(차선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택의 양보다 질이 더욱 중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직주근접 선호 경향으로 인해 도심 주거수요가 확대된 시대 환경변화를 고려해 안전진단 제도의 가중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안전진단 체계를 유지하되, 구조안정성 부문 가중치를 30% 내외로 하향하고 주거환경 가중치를 30% 내외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사실상 재건축사업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적정성 검토절차 또한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제도의 본질적 취지를 살리고 예측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외에도 객관성과 투명성을 개선해 평가의 예측가능성과 수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적정성 검토를 간소화해 꼭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만 검증함으로써 검토시간과 비용을 줄일 필요도 있다.

더불어 기초지자체 예산이 아닌, 일정조건 만족 시 수시로 관련기금(도시정비기금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하고, 토지등소유자가 원할 시 적정성검토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부담할 수도 있도록 해 예산확보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절대 다수 소유자 동의 시 안전진단 면제

현행 주택법에서는 주택건설사업시행자(민간)는 토지의 80%(10년 이전에 해당대지의 소유권을 취득해 계속 보유하고 있는 자 제외) 또는 95%(모든 토지소유자)를 확보할 경우 나머지 토지에 대해 매도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0년 “국민의 주거안정 및 주거수준 향상이라는 공익적 목적 속에서 매우 엄격한 제한조건을 만족할 경우에 한해 상대방 이익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만큼 재산권을 본질적인 내용까지 침해한다거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공동주택을 재건축하는 사업에서도 절대 다수 소유자(예. 90%)가 동의 시 안전진단을 생략하고 재건축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의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적 자치 원리를 구현하고 다른 유사한 사업(집합건축물 재건축사업)과의 형평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비자발적 재산처분 및 이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사업에 동의하지 않은 소유자의 재산에 대해 개발이익이 반영된 시가로 매수하는 것에 더해 추가적으로 이주비를 지급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은 “지금까지 재건축 정비사업에 있어 안전진단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통과의례’ 또는 ‘규제’로 사용돼 왔다. ‘통과의례’에 불과할 때는 불필요한 시간 및 비용 낭비만 초래했고, ‘규제’일 때는 정비사업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했다. 결국 두 경우 모두 정비사업 추진과정에서 불필요한 단계에 불과할 뿐이었던 셈”이라고 지적하면서 “특히 재건축의 경우 건립연한 제한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 안전진단이라는 또 하나의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주택공급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안전진단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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