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현 김래현 파트너변호사 / 한국도시정비협회 고문변호사

정비사업 현장을 둘러보다 보면, 현실과 맞지 않는 관련법령 규정이나 제도 등으로 사업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들쑥날쑥한 법‧제도의 적용으로 인해 사업진행에 혼란을 겪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에 ‘도시정비’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는 정비사업 관련 법‧제도 및 잘못된 법‧제도 적용으로 인한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 문제의 소재

법무법인 현 김래현 파트너변호사
한국도시정비협회 고문변호사

가. 재개발 도시환경정비사업(최근 도시정비법 개정으로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사라지고 재개발 구역에서도 일정 부분 오피스텔 신축이 허용된 바, 이하 ‘재개발’로 칭한다)은 사업시행인가 고시를 득하면 분양신청 절차를 진행하게 되고, 이 분양신청 절차에서 분양 대상 조합원과 현금 청산자가 나뉘게 된다.

나. 분양 대상 조합원은 관리처분계획에 포함돼 향후 이주 철거 착공을 거쳐서 신축 건물에 입주하게 되지만, 청산자의 경우 분양신청 기간 익일부로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고 조합은 우선적으로는 협의에 의해, 협의 불발 시 수용재결 절차를 통해 청산자의 소유권을 확보하게 된다.

다. 이와 같은 수용재결 절차에 대해 도시정비법 제65조 제1항은 “정비구역에서 정비사업의 시행을 위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권과 그 밖의 권리에 대한 수용 또는 사용은 이 법에 규정된 사항을 제외하고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거의 모든 조합에서 토지보상법 상 수용재결 절차에 따라서 소유권 확보 작업을 진행해왔다.

라. 위 토지보상법 상 수용재결 절차는 ▲보상계획 열람 공고 ▲협의 보상가 산정을 위한 감정평가사 선정 ▲협의 보상가 산정 후 청산 대상자와의 협의 기간 ▲위 협의 기간 도과 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 신청 ▲지방토지수용위원회 차원에서 보상 평가 시행 후 수용재결 심의 거쳐 수용재결 결정 ▲수용 개시 시점까지 보상금 임의지급 또는 공탁 ▲수용 개시일 기점으로 소유권 이전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청산 대상자 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5~6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리게 된다.

마. 하지만 대법원 2015년 11월 판결에 의하면 그동안 수년간 행해졌던 위 실무례에 대해서 굳이 토지보상법 상 절차를 준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고, 위 판례대로라면 재개발 조합의 경우 복잡하고 지난한 토지보상법 상 절차를 준용하지 않아도 협의 기간 만료 후 또는 협의 불성립이 명백한 시점에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만 신청하면 되는 것인데,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서 수용재결 신청 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는 토지보상법 상 수용재결 절차를 준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용재결신청을 각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 최고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졌음에도 도대체 왜 지방토지수용위원회는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서 수용재결 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과거 운용례만을 고집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하에서 대법원 판결을 확인해보고,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대로 실무를 운용하지 않아 일선 조합이 입고 있는 피해 사례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 대법원 판단

가. 대법원은 “도시정비법의 체계와 내용, 일반적인 공익사업과 구별되는 도시정비법 상 정비사업의 절차 진행의 특수성과 아울러 ① 도시정비법 상 정비사업의 단계별 진행과정을 보면, 현금청산대상자와 사업시행자 사이의 청산금 협의에 앞서 사업시행인가 신청과 그 인가처분 고시 및 분양신청 통지 공고 절차가 선행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수용의 대상이 되는 토지 등의 명세가 작성되고 그 개요가 대외적으로 고시되며, 세부사항이 토지등소유자에게 개별적으로 통지되거나 공고되는 점 ② 따라서 토지등소유자에 대해는 위와 같은 도시정비법 고유의 절차와 별도로 토지보상법 상 토지조서 및 물건조서의 작성(제14조)이나 보상 계획의 공고 통지 및 열람(제15조)의 절차를 새로이 거쳐야 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 점 ③ 토지보상법 상 손실보상의 협의는 사업시행자와 토지등소유자 사이의 사법 상 계약의 실질을 갖는다는 점에서 도시정비법 상 협의와 그 성격 상 구별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④ 또한 도시정비법은 협의의 기준이 되는 감정평가액의 산정에 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토지보상법 상 감정평가업자를 통한 보상액의 산정이나 이를 기초로 한 사업시행자와의 협의 절차를 따로 거칠 필요도 없는 점 등에 비춰보면, 토지보상법 상 협의 및 그 사전 절차를 정한 위 각 규정은 도시정비법 제65조 제1항 본문에서 말하는 ‘이법에 규정된 사항’에 해당하므로 도시정비법 상 현금청산 대상자인 토지등소유자에 대해는 준용될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나. 위 판례에 의하면 도시정비법 상 토지 등의 명세가 작성돼 그 개요가 대외적으로 고시되면, 세부사항이 토지등소유자에게 개별적으로 통지되거나 공고되고, 도시정비법 상 협의나 토지보상법 상의 손살보상 협의는 사법 상 계약의 실질을 갖는 면에서 차이가 없으므로 현행법에 따를 경우 관리처분인가 고시일로부터 90일 이내에 현금으로 청산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기간 이후 현금청산대상자는 토지보상법 협의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조속재결신청 청구를 할 수 있고, 사업시행자 역시 위 관리처분 인가 고시일로부터 90일이 도과하면 협의 기간 만료로 수용재결 신청 청구를 할 수 있으므로 위 기간 도과 후 현금청산대상자로부터 조속재결신청 청구가 있었는데 위 기간 만료 후 60일 이내에 수용재결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판단돼 그에 따른 지연 이자 등의 패널티를 조합은 물게 된다.

 

∥ 실무적 피해 사례 - 협의 보상가 산정을 위한 평가사 선정 및 감정가 산출 과정에서의 문제

가.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조합은 협의 보상가 산정을 위한 별도의 평가사를 선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편, 재개발조합의 경우 공공에서 평가사를 선정하는 만큼 사실상 조합이 스스로 선정하는 평가사가 없고, 위 평가사들이 청산 대상자를 포함해 종전 자산에 대한 평가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다시 말해 조합 측 영향력이 작용할 요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토지보상법 상 절차를 준용하게 될 경우 시장군수, 조합, 청산자 측에서 각각 평가사를 선정하게 된다.

나. 이 경우 청산자 측 평가사들이 청산자들을 대상으로 금액을 엄청 많이 올려줄 것처럼 영업을 하는 등으로 동의서를 받아내고, 위와 같은 영업 방식을 통해 청산자 측 평가사로 선정된 평가사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조합이나 시장군수 측 평가사의 감정 금액 대비 최소 20~30%, 많게는 50~60% 높게 감정가를 매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와 같은 감정가 역시 청산자 측 평가사는 시간 지연으로 인한 메리트를 얻어 내기 위해 감정평가서 납품 작업을 특별한 사정없이 마냥 늦춘다거나, 혹은 감정평가서를 납품한다고 해도 조합이나 시장군수 측 평가사의 감정 금액보다 월등히 높은 금액을 산출함으로써 결국 동일 물건에 대한 감정가의 차이가 큼을 이유로 감정평가 협회의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산자 측에서는 변호사를 통해서 조속재결신청 청구를 하게 되는데, 조속재결신청 청구를 하는 속내는 말 그대로 조속하게 재결신청 청구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속재결신청 청구를 통해 수용재결 신청 지연으로 인한 막대한 지연 가산금을 조합에 물리고자 하는 의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청산자 측 평가사의 감정평가서 늦장 제출, 감정평가협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과도한 평가액 산출 등으로 사실상 수용재결 신청 자체를 늦추고자 함이 대부분이다.

라. 위와 같은 상황에서 조합은 결국 수용재결 신청 지연으로 인한 막대한 지연 가산금 및 사업 지연으로 인한 사업비 상승 등을 견디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청산자 측 평가사의 평가 금액에 맞춰 타 감정가를 상향시키는 등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되는데, 결국 청산자들만 부당한 시간 지연 등을 통해서 부당이득을 꾀하게 되는 구조가 발생하게 된다.

마. 하지만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른다면 별도의 협의 보상가 산정은 불필요하고, 따라서 협의 보상가 산정을 위한 별도의 평가사 선정도 불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 결어

가. 하지만 대법원 판결도 인정하고 있는 위 내용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극구 부인하고 별도의 협의 보상가 산정 등 절차 없이 이뤄진 수용재결 신청에 대해서 그 경과를 불문하고 각하 처리하고 있는 바, 어쩔 수 없이 일선 조합에서는 과거 수년간 행해왔던 절차대로 수용재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나. 이에 대해서 일부 뜻있는 조합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른 협의 절차를 이행한 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을 신청한 경우가 있었고, 각하 처분에 대해서 행정 소송을 제기해서 다투고 있는 현장도 있으나,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이러저러 이유를 대며 토지보상법 상 보상 절차를 그대로 준용해 다시 수용재결 신청할 것만을 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차제에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지방토지수용위원회의 그릇된 업무 관행에 대해서 경종을 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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