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정비협회 하재광 사무국장

한국도시정비협회 하재광 사무국장
한국도시정비협회 하재광 사무국장

 

대한민국 집값은 문교부 소관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치맛바람 휘날리며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해온 뜨거운 교육열의 나라인 만큼,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 부서져라 고생하는 것을 마다않는 것이 우리네 부모들이었다.

1974년부터 암기식·주입식 입시 위주 교육의 폐단을 개선하고, 고등학교 간 학력차를 줄이는 한편, 대도시에 집중되는 일류 고등학교 현상의 폐단을 없앨 목적으로 고교평준화가 도입되었다. 지역별로 일정한 방식의 추첨(‘뺑뺑이라 불렸다)을 통해 학생을 해당지역 일반계 고교에 나누어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고에서는 한동안 뺑뺑이세대인 후배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까지 있었다.

어쨌든 시험이 아니라 추첨을 통해 입학이 가능해지면서 이른바 ‘SKY’로 대별되는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명문고입학을 위해서는 그 고교가 있는 지역에 거주해야 했다. 이런 고교가 상대적으로 밀집한 강남서초가 강남 8학군으로 불리며 해당지역의 집값이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평준화 대상이 아닌 비평준화 지역이 새로운 교육 우월지역으로 등장했다.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신도시였던 분당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도 초고 등이 인구와 지역에 맞게 계획적으로 설치된 데다가 이 지역이 2002년 평준화 지역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비평준화였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면서였다.

교육여건이 아직도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파급력은 다소 낮아졌다. 그럼 요즘은 어떤 요인이 집값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을까?

주택가격을 안정화시키겠다던 정부가 셀 수도 없을 만큼 삽질만 거듭하면서 전국의 집값을 다 올려버린 현재 상황에서 하나만 꼽기는 그렇지만, 아마 큰 폭의 등락을 경험한 곳은 GTX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뜻하는 GTX를 흔히 ‘Great Train eXpress’의 약자라 생각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확정된 명칭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GTX‘G’는 사업구상을 본격화한 경기도(Gyeonggi)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다만, 이 경우 특정 지자체의 사업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KTX‘Korea Train eXpress’의 약자인 것만 보더라도 GTXG경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는가). 이미 대중에게 고유명사처럼 인식이 된 데다가 딱히 바꿀만한 명칭도 없으니 통상 ‘GTX’라 부르고 있는데, 사실 국토교통부도 GTX를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은 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라는 명칭만을 사용하고 있다.

집값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곳이 서울경기인천 또는 서울 및 수도권이다.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초거대도시인 서울을 감싸고 있는 경기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광역도시인 인천에 인구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주택 수요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실제 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사람의 수는 이미 지난 2019년 말 기준으로 전체의 50%를 넘어섰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서울의 중심 강남권에서 멀어질수록 집값은 상승여력을 잃게 된다. 여기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호재가 현재로서는 교통여건 개선이고, 그 개선의 선봉장이 ‘GTX’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GTX’만 입력하더라도 GTX 노선 수혜지역과 관련된 수많은 아파트 정보가 뜬다.

현재 GTX 3개 노선은 큰 그림이 마무리된 상태이지만, GTX-D노선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GTX-A는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서울 강남 삼성역까지를 연결한다. 83.1km 구간에 10개 정거장으로 계획됐다가 국토부가 고양 창릉을 3기 신도시로 지정하면서 창릉역이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창릉역 신설에 반대하는 운정일산 주민과 찬성하는 고양창릉 주민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GTX-B는 인천 송도에서 경기 남양주 마석까지를 연결하는 노선이며, GTX-C는 양주 회천신도시 덕정에서 수원역까지의 구간이다. 강남으로의 교통망이 부실한 경기 동북부 및 서울 동북부와 집중적인 개발로 교통 수요가 상당한 군포, 의왕, 안양, 수원에서의 교통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제안된 사업이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노선이 GTX-D이다. GTX-D와 관련해 경기도는 김포~서울 강남~하남을 연결하는 노선(68.1),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과 김포에서 각각 출발해 부천종합운동장을 거쳐 하남까지 연결되는 Y자 노선(110.27)을 제안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김포 장기~부천종합운동장까지의 노선, 이른바 김부선으로 축소하여 발표했다.

이렇게 되자 인천과 검단신도시 등 제외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섰고, 해당지역 정치인들이 삭발투쟁을 벌이는 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들은 ‘GTX-D 원안사수’ ‘GTX-D, 4차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하라등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이와 관련된 국토부 발표는 이 글 작성 이후인 6월말로 예정되어 있다).

GTX 노선을 둘러싼 갈등과 집값의 등락에서 알 수 있듯, 이제 집값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통, 그중에서도 서울 강남과의 접근성이다. 집값이 교육부 소관에서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 소관으로 넘어왔으니 이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고 해야 할 터인데, 여전히 입맛이 쓰다. 기본을 무시한 채 표피적인 공급발표만 남발하면서 오히려 집값을 상승시키는 정책만 남발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말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길부터 만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길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신도시를 지정하고 택지를 개발하면서 허수에 불과한 공급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길은 고려하지 않았다. 뒤늦게 교통망을 확충하네 개선하네 나서지만 혼란만 가중되고,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던 곳까지 교통호재에 힘입어 대거 상승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GTX 노선을 둘러싼 논란은 국토의 균형발전과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목표를 상실한 채, ‘민심을 무기 삼아 선거에서 를 얻기 위해 혈안인 정치인으로 옮아갔고, 어떠한 결론이 나든 이미 바람직한 결과를 거두기는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GTX는 지하 50m 이하에 건설되어 시속 100km 내외의 고속으로 달리는 것을 상정해 계획됐다. 정차역이 많아지고, 구간이 곡선이 되면 고속철도가 아니라 전철과 다름없게 된다). 입맛이 씁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대한제당 사보 2021년 여름호 / www.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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