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공급이야!” …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필요하다

한국도시정비협회 하재광 사무국장
한국도시정비협회 하재광 사무국장

 

이 정도면 오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줄기차게 실패하는 부동산정책만 고집한 끝에 전국의 집값은 공평하게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수도권의 아파트 전세가격이 3년 전 매매가격 수준으로 급등했다고 하니 더 이상 정부의 주택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1992,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후보는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 한 마디로 대통령선거에서 승기를 잡았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은 그 후 다양하게 변주됐는데, 헛발질만 하는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는 바보야, 문제는 공급이야!”라고 말하고 싶다.

선거철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유력 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주요 공약의 하나이던 주택문제 역시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다. 참담한 정책실패를 사실상 뒷받침해주던 여당 후보들 또한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학교 위에 짓겠다는 아파트, 공항을 옮기고 짓겠다는 아파트, 그린벨트를 없애고 짓겠다는 아파트 등등 어디에든지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는데, 정말로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어쨌든 레임덕이 진행된 것을 반영하듯 여권에서도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국토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한 부동산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전략보고서에는 “2017510일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8.2대책, 12.16대책, 9.13대책, 2.4대책 등 20차례가 넘는 부동산종합대책을 지속적으로 발표시행했지만, 친정부 매체라고 비난받아온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2019년 여론조사에서조차 응답자의 57.6%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특히, 연이은 대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서울 소재 아파트 가격이, 국민들의 소득수준으로는 평생 동안 모아도 살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급등해버렸다. 또한 이러한 주택가격상승은 단지 신축아파트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어서 실수요자 및 세입자의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는 또 실정(失政)의 책임을 일반국민의 탓으로 전가하고, 부동산을 통한 개인의 불로소득부터 바로잡겠다고 국민들을 향해 징벌적 과세(課稅) 수준의 애먼 칼을 빼든 것이다. 순서가 이미 잘못되었고, 퇴로 없는 정책은 저항만 낳을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집값이 아무리 뛰어도, 월세 가격이 서민들의 주거불안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어도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변하던 정부와 여당의 기존 입장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강하게 자아비판 한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은 주택가격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공급 시그널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해왔다. 그리고, 주택 공급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가혹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충고했었다. 애써 이를 무시했던 것이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 집값상승을 불러왔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재건축재개발을 하면 해당지역의 집값이 상승하니 이를 막겠다고 강하게 규제했지만, 이로 인해 주택공급이 막히게 되니 희귀성이 높아진 신축 아파트의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 여파로 다른 아파트 역시 함께 뛰었다. 월세 가격 안정화를 꾀한다며 임대차3법을 강행한 결과는 또 어떤가. 월세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여기에 대출규제까지 이어지니 주거불안은 더 심각해졌다.

집값을 잡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정책은 공급이다.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대도시에서 공급을 촉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건축재개발밖에 없다. 재건축재개발을 옥죄는 한 주택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고, 당연히 주택가격 안정도 요원하게 된다.

최근 재건축을 완료한 단지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초과이익환수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반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들은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재건축을 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안전진단 통과인데, 현 안전진단기준으로는 그 어떤 단지도 통과를 자신할 수 없다. 실제로 40년에 가까워진 단지들 역시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재건축은 30년이 지난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최소한 D등급 이상이어야 하는데, 현행 안전진단 기준은 구조안전 50%, 주거환경 15%, 시설노후도 25%, 비용분석 10%이다. 이 기준은 현 정부 초기인 20182월에 재건축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전 기준(구조안전 20%, 주거환경 40%, 시설노후도 30%, 비용분석 10%)을 변경한 것이다.

사실 심각한 부실시공이 아니라면 50년이 넘은 아파트도 구조안전에 문제는 없다. , 구조안전 분야를 20%에서 50%로 기준을 상향했다는 것은 재건축사업을 금지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표명이었던 셈이다.

재건축은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진행되는 사업은 아니다. 주거환경 개선 등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반영되면서 진행된다. 만약 구조적 문제점이 있는 아파트라면 자치단체장이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직권으로 재건축을 강행할 수도 있다.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혹시라도 실현 가능하더라도 효과가 미미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 전에 가장 현실적인 방안의 하나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내세우는 대통령후보들이 없다는 게 앞으로의 주택정책도 기대할 것이 없겠구나 하는 실망감만 준다.

각 정당의 후보들끼리 이전투구를 하던 여야 후보들이 힘겨루기를 하던 정치의 일환이니 뭐라 하고 싶지 않지만, 민생의 가장 중요한 축인 주택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모든 후보들이 공통된 인식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출처 : 대한제당 사보 2021년 가을호 / www.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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