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유한) 현 이기영 변호사

[지역주택조합 사업 바로 알기]

 

법무법인(유한) 현 이기영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현 이기영 변호사

들어가며

지역주택조합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예정세대수, 공급평형, 단지 배치 등 사업계획의 세부사항이 변경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업계획의 변경은 조합원 개인이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의 총액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상당수 가입계약자들은 소송 과정에서 과도한 추가분담금의 발생을 사유로 들어 사정변경 또는 이행불능에 따른 계약해제를 주장한다.

필자가 수행한 사건에서도 인허가 과정에서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전체 세대수가 축소되면서 세대당 공급면적이 늘어났고, 이에 비례해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부담금이 당초보다 2배 가량 증가한 사례가 있었다.

최근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이행불능 또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가입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보아 그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 했는 바, 해당 판결(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286116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본다.

 

대상 판결의 요지

. 쟁점

지역주택조합 가입 당시 예정했던 공급평형 및 조합원부담금이 변동(평형 : 4959㎡ → 7084로 약 40% 증가 조합원부담금 : 23000만원~28000만원 5억원~55000만원으로 약 2배 증가)된 것이 피고(조합)의 귀책에 따른 이행불능에 해당하거나 원고(조합원)들이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을 구성하는지 여부

 

. 원심의 판단

조합가입계약에서 사업계획 변경에 따른 건축규모 및 세대별 단위면적 등의 변동으로 인해 조합원부담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고, 주택법에 의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조합원부담금이 2배로 증가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이므로, 위와 같은 조합원부담금 증액은 가입 당시 원고들이 예측할 수 있었던 범위를 초과하는 변경 또는 현저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또한, 부담금이 증액됨과 동시에 공급받는 아파트 분양면적이 확대된다는 이유만으로, 위 증액이 원고들이 예측할 수 있었던 변경에 해당한다거나 현저한 사정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원고들의 가입계약은 피고의 귀책으로 인해 이행할 수 없게 됐거나 원고들의 가입 당시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함으로써 더 이상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게 됐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그와 달리 판단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한다.

 

. 대법원의 판단

주택법상 지역주택조합사업은 통상 지역주택조합 설립 전에 미리 조합을 모집하면서 그 분담금 등으로 사업부지를 매수하거나 사용승낙을 얻고, 그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추가적으로 소유권을 확보하고 사업승인을 얻어 아파트 등 주택을 건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그 진행과정에서 조합원의 모집, 재정의 확보, 토지매입 작업 등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가 많음에 따라 최초 사업계획이 변경되거나 당초 예정했던 사업의 진행이 지연되는 등의 사정이 발생할 수 있다(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375892 판결 참조).

따라서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이 된 사람이, 사업추진 과정에서 조합규약이나 사업계획 등에 따라 당초 체결한 조합가입계약의 내용과 다르게 조합원으로서의 권리·의무가 변경될 수 있음을 전제로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그러한 권리·의무의 변경이 당사자가 예측가능한 범위를 초과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조합가입계약의 불이행으로 보아 조합가입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212467 판결 참조).

이번 사안의 경우 가입계약서에서 주택평형 등 사업계획이 변경될 수 있고 조합원이 추가로 부담금을 납입할 수 있음을 예정하고 있어, 원고들은 사업 과정에서 가입계약에서 정해진 아파트의 공급면적 및 조합원부담금이 피고의 조합총회 결의로 변경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던 점 원고들 역시 사업변경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에 서명날인한 점 피고 조합규약 역시 조합원에게 공급하는 주택의 규모는 조합의 사업계획 및 사업승인의 내용에 따라 평형별로 확정한다고 정하고 있는 점 피고 임시총회에서 전용면적을 4959에서 각 7084로 변경하는 사업계획 변경 승인 안건이 결의된 점 등에 비춰볼 때 원고들이 당초 공급받기로 한 아파트 전용면적이 넓게 변경되고 이에 따라 조합원부담금이 증가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에 대한 아파트 공급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볼 수 없고, 원고들이 가입 당시 사업계획의 변경을 예측할 수 없었다거나 그 변경의 정도가 예측 범위를 초과한다고 보이지 않는다. 또 사업계획 변경이 조합원인 원고들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발생해 가입계약의 내용대로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에는 이행불능 또는 사정변경을 원인으로 한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의 해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는 바,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상세검토

사정변경의 원칙은 “pacta sunt servanda(‘합의는 준수돼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라는 법언(法諺)으로 상징되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포괄근보증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대법원이 사정변경에 따른 계약해제 주장을 받아들인 경우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합원 가입계약의 경우 통상의 아파트 분양계약과 달리 가입자들이 사업주체가 돼 수년에 걸친 사업을 직접 추진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바, 계약의 체결과 이행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고 그 기간 동안에 다양한 변수에 따라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도 대단히 높은 편이다.

또한 주택조합과 같은 비법인사단에서 사업계획의 변경과 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의 총의에 따라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되며, 조합원 개인의 개별적 의사와 부합하지 않더라도 구성원은 그 결과에 구속된다. 만일 가입 당사자가 처음 예상 내지 기대했던 것과 실제 사업의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사정변경에 따른 해제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보면, 다수결로서 단체의 의사를 형성하는 주택조합은 정상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곤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사정변경에 따른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가입 당시 자신들이 추후 공급받게 될 주택이 처음부터 고정돼 있는 거래목적물에 해당하거나 기타 추후 변동 가능성이 없는 거래라고 인지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인 사정으로 편입됐다고 의율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사정변경의 요건을 만족하는지 특별히 더 엄격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합원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변경을 가져오는 사항에 대해서는 총회 부의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게 되고, 실무상으로도 가입계약서 및 조합규약에서 사업계획 변동 및 그에 따른 추가분담금 발생 가능성을 미리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와 상반되는 예외적인 사정, 예컨대 가입 당시 추가분담금이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이 있었다거나 확정부담금제에 해당한다고 홍보했다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현출되지 않는 이상 만연히 사정변경이 발생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단순히 계약 체결 이후 장래에 발생한 특정한 상황이 일방 당사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해 계약의 구속력에서 만연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특히 주택조합은 일반적인 건설사업자와 달리 조합원들이 합동행위인 설립행위와 각 조합가입계약을 통해 구성한 비법인사단이고, 조합원들은 의결권 행사를 통해 조합의 단체의사를 형성하는 구성원이자 조합이 갖는 권리의무의 실질적 귀속주체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기도 한 바, 이와 같은 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단체법적 법률관계에 사인 간의 거래에 관한 일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주택조합사업에서의 가입계약 해제에 관한 법리에 대해 상세한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특히 2배 이상 부담금이 나와 변동의 폭이 다소 이례적으로 큰 사안이었음에도 그 변경의 정도가 예측 범위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현장 사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상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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