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인석 수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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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

원고는 부산에서 재개발사업을 목적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따라 설립된 조합이고, 피고는 원고의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재직하다 조합설립인가 후에는 조합장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피고는 추진위원회와 동의서 징구 용역계약을 체결한 업체의 대표이사로부터 계약에 대한 사례금 및 향후 편의 제공 명목으로 2000만원을 받았고, 대의원들에게 식사를 접대한 다음 식사비용을 시공사 관계자가 계산하게 함으로써 그 액수 상당의 뇌물도 수수했으며(이하 뇌물수수행위), 원고를 대표해 도시정비법상 수의계약의 방법으로 체결할 수 없는 계약을 수의계약의 방법으로 체결했다(이하 도시정비법상 계약방법 위반행위).

위와 같은 피고의 범죄행위가 발각돼 수사기관에서는 원고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으로 피고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고, 이에 원고는 20198월경 피고를 조합장에서 해임하는 결의를 해 같은 달에 원고에 대한 해임등기가 경료됐다.

이후 피고는 일부 조합원들과 함께 원고의 사무실에 들어와 점거를 시도하다 이를 저지하는 원고의 직원을 다치게 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명의 조합원과 함께 원고의 사무실에 들어오려 하다가 원고 측의 반대로 출입에 실패했다(이하 불법점거 시도행위).

법원은 위와 같은 피고의 범죄사실에 관해 피고에게 징역 1년 등을 선고했으며, 이후 피고의 항소와 상고가 기각돼 위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당사자의 주장

원고는 피고의 뇌물수수행위, 도시정비법상 계약방법 위반행위는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이고, 이로 인해 원고는 부득이 피고를 해임하기 위해 해임총회를 진행, 비용을 지출하는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해임총회 비용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고의 불법점거 시도행위도 불법행위이고, 이로 인해 원고는 업무상의 평온이 침해되고 업무가 방해된 액수를 증명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원고가 피고를 해임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은 원고가 피고로 인해 필수적으로 지출했어야 하는 비용이 아니므로, 그 비용에 대한 배상책임을 피고에게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

도시정비법상 조합장, 추진위원장은 위임관계에 있는 수임인으로서, 도시정비법이 추진위원장, 조합임원을 형법상 뇌물죄에 관한 공무원으로 의제하는 취지에 비춰보면, 피고의 도시정비법에 위반한 뇌물수수 행위, 도시정비법상 계약방법 위반행위는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가 된다. 피고는 이로 인한 원고의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피고가 여러 명의 조합원과 함께 원고의 사무실에 들어가 전원을 차단하고 이를 저지하는 원고의 직원을 다치게 한 것은 피고의 조합장 직과 무관하게 원고의 업무를 방해하는 위법행위에 해당한다.

원고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해임총회를 개최했고, 그 당시 피고는 뇌물수수행위, 도시정비법상 계약방법 위반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었던 점 그러한 상황에서 원고가 피고로 하여금 조합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해 이 사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합리한 점이 있고, 피고가 임의로 사임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총회를 개최하는 것 외에 달리 원고가 신속히 사업을 진행할 방법을 찾기 어려운 점 피고는 자신의 직무를 정지한 원고 대의원회 결의에 대한 효력정지를 신청하는 등 조합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던 점 피고의 혐의사실이 죄질이 좋지 않고, 결국 이 사건 뇌물수수행위, 도시정비법상 계약방법 위반행위로 실형 1년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게 된 점에 비춰보면, 원고가 피고의 해임을 위해 개최한 해임총회 비용 상당액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로 볼 것이다.

한편, 원고가 구하는 것은 뇌물수수행위, 도시정비법상 계약방법 위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이고, 피고가 사임하지 않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피고에게 사임할 의무가 없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도 손해를 인정하는 데 지장이 없다.

그 액수에 대해, 원고가 주장하는 해임총회 비용 내역 중 총회에 출석한 조합원들에게 사례조로 지급되는 임시총회 회의비는 비록 출석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급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규범적으로 총회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는 비용에서 제외한다.

피고가 원고의 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불법점거를 시도한 행위로 인한 원고의 재산적 손해는 재개발조합인 원고의 업무 특성상 업무방해로 인한 재산상 손실액을 산정하기 어려우므로, 민사소송법 제201조의2에 따라 100만원을 인정한다.

 

결어

정비사업 현장에서 임원에 대한 해임 절차가 진행될 때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해임을 위해 소요된 비용을 해임된 임원에게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임총회를 위해 지출한 비용을 해임된 임원으로부터 실제 환수하는 사례는 찾기가 어려웠다. 이는 해임 절차가 범죄행위 등 명확한 법 위반행위 등을 사유로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명확한 법 위반행위 등을 사유로 이뤄지는 해임 절차라 하더라도 불법행위와 해임 절차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에 위 법원의 판단은 범죄사실의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조합장으로서의 직무 수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던 임원을 해임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수임인인 정비사업 조합의 임원에게 자신을 추상과 같이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경종과 같은 판결이기도 하다.

다만, 위 법원의 판단을 일반화해 해임된 임원에게 조건 없이 해임총회를 위해 지출한 비용을 환수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위 법원의 판단은 뇌물수수라는 중대 범죄행위와 수사 및 기소 절차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직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특수 상황에 대한 판단이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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