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유한) 현 이기영 수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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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주택법 제11조의2 3항은 주택조합 및 주택조합의 발기인은 제2항 제5호에 따른 업무 중 계약금 등 자금의 보관 업무는 제1항 제5호에 따른 신탁업자에게 대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위 규정은 자금 집행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유발되는 각종 비리들을 예방하기 위해 2020123일 개정된 주택법(법률 제16870)에서 신설됐는데,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만 자금의 보관 업무를 위임함으로써 사업비 지출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조합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현장에서는 신탁계좌 이외의 경로로 분담금을 납부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바, 이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안의 개요

A20167월경 B지역주택조합과의 사이에 조합원 신규 가입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가입계약서에 따르면 A는 주택건설 사업에 필요한 사업비용을 분담금 및 업무추진비 납부 일정에 따라 납부해야 하는데, OO은행에 개설된 예금주 △△신탁 주식회사 명의의 특정 계좌에 조합원 본인 실명으로 입금해야 하고 다른 계좌에 입금된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으며 조합은 가입자가 위 계약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이행의 최고 없이 즉시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고, 이때 가입자는 조합원 자격이 자동으로 상실되는 한편, 조합이 조합원 자격을 박탈, 제명 처분을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더불어 가입계약서에는 위와 같이 제명 처리되는 경우 이미 불입한 납입금 중 계약금 및 업무대행료 등을 제외한 금원만을 환불받기로 한다는 점이 각 기재돼 있다.

또한 B 조합의 조합규약 역시 조합원 분담금은 조합의 사업목적 외에는 사용할 수 없고, 조합이 지정한 금융기관에 예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었다(참고적으로 위 조항은 국토교통부 표준규약 제38조 제1항 및 제2항과 동일하며, 대다수 조합의 규약들이 공통적으로 두고 있는 규정이다).

A△△신탁 주식회사 명의의 지정계좌에 400만원을 입금하면서, 동시에 전 조합원이던 C의 계좌로 3600만원을 납부했다. 몇 년 뒤 B 조합은 A가 분담금 및 업무추진비를 완납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A를 조합원에서 제명한다는 조합원 제명통보서를 발송함으로써 조합가입계약 해지 의사를 통보했다.

이에 A는 자신은 신규 조합원이 아니라 C로부터 조합원 지위를 4000만원에 승계받기로 한 것이고 그 전액을 송금함으로써 납부의무를 모두 이행했으므로, 분담금 미납을 사유로 한 제명 통보는 부당하다고 다투면서 B조합을 상대로 기납부 금원 전액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법리

주택법에 따른 지역주택조합과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하면서 분담금은 조합이 지정하는 신탁회사 명의로 개설된 단독계좌에 개별적으로 입금시킴을 원칙으로 하고 이외의 계좌에 입금된 분담금은 인정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조합원이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진다고 정한 경우, 그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에게 분담금 지급을 청구할 때 조합가입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신탁회사 명의 계좌로 납부하도록 요구할 수 있을 뿐 조합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요구할 수 없고, 변제 수령권한도 없다(대법원 2022. 6. 9. 선고 2021270494 판결 등 참조).

 

법원의 구체적 판단 (부산지방법원 2023. 5. 12. 선고 202265443 판결)

AB조합의 지정 신탁계좌가 아닌 C 명의 계좌로 3600만원을 입금한 것을 B조합에 대한 분담금의 입금으로 인정할 수 없고, 원고가 납입한 돈은 400만원에 불과한 바, A는 조합가입계약에서 정한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은 자에 해당한다. B 조합은 이를 이유로 A에게 반복해 제명 통보를 했는 바, 그에 따라 조합가입계약은 A의 귀책사유로 해지됐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 경우 A에게 반환할 금액은 조합가입계약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 계산되며, 조합가입계약 제9조 제3항에 의하면 가입자의 귀책사유로 조합가입계약이 해지된 경우에 조합은 기불입 납입금 중 계약금 및 업무대행료를 제외한 납입 원금만을 환불한다고 정하고 있는 바, 결국 A에 대한 제명 처리 및 조합가입계약 해지에 따라 해당 금액을 공제하고 나면 A에게 반환할 금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검토

대부분의 조합가입계약은 조합원분담금 및 업무추진비는 조합 지정 계좌에 조합원 본인 실명으로 무통장 입금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이외의 계좌에 입금된 분담금 및 조합 업무추진비는 일체 인정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가입자 본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귀속함과 동시에 조합을 상대로 민형사상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는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다.

앞서 소개한 사례에서 A는 기존 가입자였던 C의 계약당사자 지위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일반적인 절차인 명의변경을 하는 대신 신규 조합가입계약서를 작성했는데, B조합의 지정계좌로 분담금 전액을 입금하는 대신 B조합이 C에게 지급해야 할 환불금을 C의 계좌로 직접 지급함과 동시에 나머지 금원만을 B조합에 입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가입계약 및 조합규약에 배치되는 것이었으나, 당시 B조합의 조합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지급 방식에 대해 구두 승인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A의 입장에서는 납부해야 하는 금원 전부를 이체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B 조합의 새로운 집행부 입장에서는 신탁계좌에 마땅히 남아있어야 하는 A의 분담금 입출금내역을 찾을 수가 없으니 A를 미납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 사안에서 AB조합이 모두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있었으나, 결국 계약서와 규약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법률관계를 형성한 A가 최종적인 불이익을 모두 부담하는 결론으로 정리됐다. C의 지위를 승계받는 것이면서도 안일하게 신규 조합가입계약의 형식을 취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위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조합과 가입계약을 체결하려는 자는 가입계약서의 내용을 숙지하고 정해진 절차를 준수해 반드시 지정된 계좌로만 분담금을 납입해야 하고, 조합 역시 이를 제외한 어떠한 경로로도 분담금을 수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해진 절차와 방식을 슬금슬금 위반하거나 우회하기 시작하면 기존에 있던 규정들은 독자적인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이는 결국 조합 자금의 방만한 운영이라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조합과 조합원 모두 이와 같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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