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4월 14일까지 특별전시

2000년 전 남인도의 미술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오는 414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전,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이번 특별전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지난해 717일부터 1113일까지 개최한 ‘Tree & Serpent: Early Buddhist Art in India’의 한국 전시다. 인도 데칸고원 동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남인도 미술은 미국 전시에 이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데, 뉴델리국립박물관 등 인도 12개 기관과 영국, 독일, 미국 등 4개국 18개 기관의 소장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중에는 발굴된 후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간 적 없던 유물이 대거 포함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전시가 그동안 북인도에 편중돼 있던 인도 불교미술사 연구의 시점을 남쪽으로 돌리고자 노력한 학술적 전시였다면, 한국 전시는 관람객들이 생명력 가득한 남인도 미술 세계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이는 그동안 박물관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세계 문명전을 개최해 온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신비의 숲이야기의 숲

스투파를 지키는 마카라(기원전 2세기 후반, 바르후트, 인도박물관)
스투파를 지키는 마카라(기원전 2세기 후반, 바르후트, 인도박물관)

스투파의 숲은 끓어오르듯 뜨겁고 활기찬 나라, 남인도에서 온 생명력 넘치는 신들과 석가모니의 이야기다. 남인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 중엽,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인도 전역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내 스투파를 세우고 안치하게 했을 때였다. ‘스투파는 불교에서 부처나 훌륭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로,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절반 이상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 남인도에 세워진 스투파를 장식하던 조각이다. 전시실에는 이러한 스투파 조각들이 숲을 이루듯 서 있다. 관람객들은 마치 2000년 전 스투파의 숲을 여행하듯 전시실 안을 거닐며 남인도 미술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입에서 연꽃 넝쿨을 뿜어내는 자연의 정령(기원전 2세기 후반, 바르후트, 알라하바드박물관)
입에서 연꽃 넝쿨을 뿜어내는 자연의 정령(기원전 2세기 후반, 바르후트, 알라하바드박물관)

이번 특별전은 두 가지 숲으로 이뤄져 있다. 첫째는 신비의 숲이다.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 뿌리내린 남인도 고유 문화에 불교가 스며들면서 이색적인 숲이 탄생한다. 인도인들은 숲속의 정령이 풍요를 가져와 준다고 믿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와 대지에 깃든 신을 남성형은 약샤, 여성형은 약시라 불렀다. 자연의 정령이던 이들은 불교가 전해지면서 스투파 장식의 조각으로 등장한다. 자연의 정령과 불교의 신들이 어울려 살아가던 생명의 숲을 표현하기 위해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스투파의 봉분을 형상화한 둥근 원들로 순환의 질서를 형상화한 공간을 연출했다.

두 번째는 이야기의 숲이다. 북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의 석가모니 이야기는 남인도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문화와 만나 북쪽과 달리 활기찬 분위기로 바뀐다. 먼저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그려진 남인도 스투파의 규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다양한 상징과 서사로 이뤄진 그의 인생 드라마가 돌 표면에 조각돼 드라마틱한 인도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다.

 

전시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

첫째, 사타바하나왕의 안내로 시작되는 스투파 여행

사타바하나의 왕과 그의 시종들](1세기 후반, 아마라바티, 영국박물관)
사타바하나의 왕과 그의 시종들](1세기 후반, 아마라바티, 영국박물관)

전시는 남인도를 다스렸던 사타바하나왕의 안내로 시작된다. 남인도에서는 일찍부터 유럽과 동남아시아 국제 교역으로 상인과 장인 계급이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고안할 만큼 유쾌한 상상력의 소유자들이었고, 남인도 불교는 그들의 후원을 받아 전래 초기부터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사원을 지을 수 있었다. 남인도 사원의 중심, 스투파에서 가장 특징적인 두 가지는 나무와 신화 속 뱀인 나가도상이다.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셔 둔 무덤이었지만, 물이 샘솟고 생명이 자라는 재창조의 공간으로 신앙되고 조형화됐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3세기 말, 나가르주나콘다, 나가르주나콘다고고학박물관)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3세기 말, 나가르주나콘다, 나가르주나콘다고고학박물관)

 

둘째, 보이지 않아도 믿게 하는 힘

싯다르타, 머리카락을 자르다(3세기 말, 나가르주나콘다, 뉴델리국립박물관)
싯다르타, 머리카락을 자르다(3세기 말, 나가르주나콘다, 뉴델리국립박물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와 빈 대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발자국, 그의 가르침을 뜻하는 수레바퀴처럼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상징으로 표현됐다. 스투파 조각에서 보이지 않아도 그의 존재를 믿게 하는 상징의 힘을 찾아보자. 상징과 은유로 대상을 나타내던 것에서 인간의 형태로 조형화되는 변화의 순간을 이번 특별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리함을 옮기는 코끼리(기원전 2세기 후반, 바르후트, 알라하바드박물관)
사리함을 옮기는 코끼리(기원전 2세기 후반, 바르후트, 알라하바드박물관)

 

셋째, 상상력의 힘

피프라와 출토 사리(기원전 240-200년경, 피프라와, 개인소장)
피프라와 출토 사리(기원전 240-200년경, 피프라와, 개인소장)

국립중앙박물관은 학술전시로 기획된 미국 전시를 문화사적 관점으로 재기획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인도에서 일어난 문화의 흐름과 새로운 신앙의 전파가 남인도 고유 미술에 어떤 자극과 상상력을 제공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 이를 위해 관내 큐레이터가 작성한 원고를 기반으로 쉬운 전시정보 만들기팀과 협업해 이해하기 쉽도록 수정했다. 전시실에서 제공되는 모든 전시 정보는 이렇게 수정된 설명문으로 제작했으며, 모바일 전시 안내 프로그램에서 텍스트와 음성으로도 제공해 전시를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넷째, ‘에 담아낸 박물관의 메시지

머리 다섯 달린 뱀이 지키는 스투파(1세기 후반, 아마라바티, 영국박물관)
머리 다섯 달린 뱀이 지키는 스투파(1세기 후반, 아마라바티, 영국박물관)

전시실은 이국적인 신들과 흥미진진한 석가모니 이야기를 담기 위해 따뜻한 남인도 숲으로 변신했다. ‘이라는 키워드에는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는 박물관의 메시지도 담았다. 전시실 곳곳에 숨어있는 숲속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표정의 그리핀, 고양이를 닮은 사자, 신나 보이는 코끼리와 스투파를 지키는 뱀 등 자연의 생명을 소중히 했던 인도인들의 시선이 기다리고 있다.

빈 자리를 향한 경배(기원전 2세기 후반경, 바르후트, 인도박물관)
빈 자리를 향한 경배(기원전 2세기 후반경, 바르후트, 인도박물관)

박물관은 전시를 준비하며 지구의 과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도 담았다. 먼저 전시실 공사 때에 이전 전시에서 사용한 벽을 70% 재활용해 폐기물의 양을 줄였다. 그리고 전시실 내 전시품 안내는 종이에 인쇄하지 않고 모바일 전시 안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어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전시의 도록 표지도 국제산림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생분해와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친환경 용지를 사용했다.

[사진 및 자료제공=국립중앙박물관]

 

저작권자 © 도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