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대표 / (주)신한피앤씨

이재원 대표 / (주)신한피앤씨

정비사업 추진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사업추진의 제반 절차를 담당하는 실무자가 가장 어렵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대관업무’이다. 정비사업은 법에서 정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를 받으며 진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무자들은 각 단계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담당공무원과 업무협의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생각 이상으로 까다롭고 힘들기 그지없다.

일면 절차를 밟는 것이 간단하게 여겨질 수 있다. 법에서 정한 바대로 요건을 맞추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이나 제도 등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란 대개 불친절할 만큼 ‘대략적’으로 되어 있다. 즉, 절차의 상당 부분이 해당 지자체의 ‘재량범위’에 속해 있고, 담당공무원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도시정비회사의 실무자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일례로 특정 사안에 대해 담당공무원에게 문의를 했다고 치자. 해석이 까다롭거나 민원발생 소지가 있으면 ‘국토해양부’ 등 관할 정부기관의 ‘유권해석’을 받아오라고 한다. 그래서 국토해양부 등에 유권해석을 요구하면 질질 끌다가는 십중팔구 ‘법에서 어떻게 정하고 있으며, 이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판단할 부분’이라고 유명무실한 유권해석을 내놓는다. 한 마디로 정책당국끼리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탁구를 치듯 공을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이 기간 동안 정비사업의 추진이 제자리걸음을 걷게 되고, 조합원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무원들의 이 같은 행동에는 잦은 순환보직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 이후 공무원들의 순환보직 폐해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순환보직 시스템에 따라 여러 보직을 거치다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관료만 양성하고 있다”며 순환보직 개혁 의지를 거듭 밝히기까지 했다.

순환보직은 공무원 개인의 능력 발전을 목적으로 제도화된 배치전환으로 근본취지는 매우 긍정적이다. 즉, 동일 직위 장기근무에 따른 침체를 방지하고 창의적 직무수행을 유도하며, 과다하게 빈번한 전보로 인한 전문성 및 능률의 저하를 방지하여 안정적인 직무수행을 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전보를 실시하는 것이 바로 순환보직의 도입 취지이다.

아울러 순환보직은 조직 전체적으로도 보직 부적응 해소, 침체 방지, 인사관리의 융통성 증대, 할거주의나 부패 방지 등의 순기능을 가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도입취지가 현실적인 효과로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문성과 책임감 부족이라는 악영향을 더 미친다는데 있다.

순환보직의 문제점은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2008년 발표한 ‘정부부문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인사제도의 개선 : 순환보직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에서 연구원은 “정부부문의 낮은 경쟁력의 요인으로 공무원의 역량 부족, 특히 전문성 부족이 자주 지적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부문으로 유입되는 인력의 질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제의 원인을 구조적․제도적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며 “현황 파악 결과, 우리나라는 순환보직이 지나치게 자주 이루어져 순환보직의 긍정적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그 근거로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하고, 공무원의 임직 후 1년 이내 전보비율이 2006년 현재 4~5급은 42%, 고위공무원과 1~3급은 50%이며, 특히 고위공무원은 61%, 1급은 75%에 달하며, 이러한 과도한 순환보직은 계급제와 연공서열이 결합하여 발생하는 인사이동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잦은 순환보직은 마찰적 비효율, 업무 연속성 및 책임성 저하, 유인 왜곡, 업무 파악 및 숙지 저해, 전문성 축적 저해 등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며, 또한 보직 이동시 전문성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전문성 축적을 크게 저해한다.

실제로 잦은 순환보직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낳는다. 먼저 동시다발적 업무 인수인계로 인해 마찰적 비효율 발생하고, 업무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떨어지며, 책임소재 불분명에 따라 책임성이 저하된다. 또, 단기적 업적을 위해 비현실적 계획을 남발하거나 곤란한 업무의 처리를 지연하고 기피하는 등의 현상 발생한다. 아울러 짧은 재임기간으로 인해 업무의 파악 및 숙지, 나아가 전문성 축적에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고, 특히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의 경우 외국은 한 분야에 최소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근무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재임기간이 매우 짧아 전문성 축적에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할 때, 공무원뿐만 아니라 기업의 임직원들도 ‘신임’은 ‘전임’의 업무성과를 이어받아 발전시키기보다는 전임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더 짙다.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에 과잉 또는 과소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업무협의를 하다보면 ‘전임’과 ‘후임’이 판이하게 달라 어려움을 겪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전임공무원과 간신히 업무협의를 완료단계까지 이끌어냈는데, 갑작스럽게 담당공무원이 바뀌면서 후임공무원과 처음부터 다시 업무협의를 해야 하는 일도 많다. 또, 전임은 된다고 했던 일을 후임은 안 된다고 하고, 전임은 안 된다고 하던 일도 후임은 된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자의적인 재량행위 외에 담당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도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보직이 바뀌게 되면 업무파악을 하는 데만도 족히 몇 개월은 걸리기 마련인데, 정비사업과 관련이 없던 부서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담당으로 오면 더욱 그렇다. 정비사업을 지도․감독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담당공무원이 정비사업의 ‘정’자도 잘 모르니 업무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게다가 도시정비법이나 도시정비조례 등 관련 법규와 제도가 수시로 바뀌니 담당공무원조차 법규와 제반 절차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사실 정비사업과 관련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와 변호사․법무사․설계사․감정평가사 등 관련 전문업역 종사자들이다. 정비사업을 알지 못하면 사업을 영위할 수 없으니 꾸준히 공부하고, 전문적인 능력을 보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조합이나 추진위원회 임원들은 물론 관심 있는 조합원들의 ‘전문성’도 놀랄 만큼 높아졌다. 도시정비법에 추진위원회 및 조합의 임원에 대한 교육 규정이 생겼고, 서울시도 조례개정을 통해 교육 의무화를 도입했다. 또, 정비사업 관련 각종 단체에서도 수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담당공무원들의 경우 제대로 직무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길어야 1~2년이면 다른 보직을 맡게 되니 관성적으로만 업무를 처리할 뿐 전문성을 축적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이러한 현상은 곧 적극적인 행정서비스를 기피하는 풍토로 이어진다. “공무원은 민원발생에 가장 취약하다”는 말은 비밀도 아니다. 즉, 가급적이면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업무를 보고, 혹 민원이 발생하면 민원 당사자 사이에 ‘해결’보도록 권하거나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정비사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수시로 민원이 발생한다. 이 민원을 방지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할 곳이 바로 인허가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이고 담당공무원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행정서비스를 펼치는 지자체와 담당공무원은 극히 드물다. 대관업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무원 A는 몇 년 간 서울시에서 정비사업 업무를 담당하다가 ‘개발’이 아닌 ‘보존’과 관련된 부서로 이동하더니, 얼마 전에는 구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구청에서는 자신의 주업무였던 정비사업 관련 부서를 맡게 됐다고 하지만, 업무에 익을 만하면 자리를 옮기게 되니 ‘승진’도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공무원 B도 마찬가지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비로 대학원을 다닐 정도로 늘 공부하는 공무원이었지만, 자신이 맡던 업무를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까지 진학했음에도 순환보직에 따라 전혀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근무하게 됐다. 물론 언젠가는 순환보직에 따라 다시 자신의 주업무를 맡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전공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일반관리자’의 ‘소양’을 쌓는 수밖에 없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재선됨에 따라 서울시의 정책기조가 나름 연속성을 가질 수는 있게 됐지만, 제2기 체제에 맞춰 크고 작은 인사이동이 예상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쪼록 이번에는 인사이동이 있더라도 기존 업무와의 연속성, 전문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업무의 성격 및 전문성을 고려하여 순환보직의 범위를 축소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보직은 성격이 유사한 보직간, 또는 선후 업무가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보직으로 순환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지방자치단체와 담당공무원들로부터 적극적인 행정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고객인 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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