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유한) 현 홍수임 변호사

 법무법인 현의 ⌜정비사업 법률산책⌟ ▮

 

법무법인(유한) 현 홍수임 변호사

∥ 문제의 소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31조 제1항은 조합을 설립하려는 경우 정비구역 지정·고시 후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5명 이상의 추진위원회 위원 및 운영규정에 대한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 조합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시장·군수 등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문상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처분이 있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선결적으로 ‘정비구역지정 고시’가 있어야 하나, 실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토지등소유자들이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 등에 필요한 용역계약 등을 체결,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와 관련해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용역계약에 대해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 주민총회에서 추인결의가 있다면,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용역계약에 관한 권리의무가 추진위원회에 당연히 귀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추인결의가 없는 경우에도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와 이를 승계하는 조합이 여전히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용역계약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는 것인지 문제된다.

 

∥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와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의 동일성 여부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처분의 법적 성격에 관해, 대법원은 ‘조합의 설립을 위한 주체에 해당하는 비법인사단인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행위를 보충해 그 효력을 부여하는 처분으로서 조합설립이라는 종국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단계의 처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두8291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위와 같은 대법원의 법리에 따라, 2021년 1월 28일 서울고등법원은 “구성승인 이전 조합설립을 목적으로 해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민법상 비법인사단으로서의 실체를 갖췄다면, 그러한 단체가 추진위원회 구성승인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는 구 도시정비법이 정한 추진위원회의 구성을 보충하는 효력을 부여함에 불과하므로, 구성승인 이전 비법인사단과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의 단체로서의 동일성에는 영향이 없고, 구성승인 이전 비법인사단이 그 목적 수행을 위해 체결한 사법상 계약의 효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성승인을 받은 추진위원회에도 미친다”라고 판시했다.

즉,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와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는 동일한 단체에 해당하므로,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계약의 효력은 별도의 추인결의 없이도 당연히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에 미친다는 입장이다. 다만, 위와 같은 동일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용역계약 체결 당시 가칭 추진위원회가 비법인사단으로서의 실체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용역계약의 효력 발생 요건

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은 추진위원회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선정 및 변경(제1호) ▲설계자의 선정 및 변경(제2호) ▲개략적인 정비사업 시행계획서의 작성(제3호) ▲조합설립인가를 받기 위한 준비업무(제4호) ▲그 밖에 조합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제5호)로 규정해 추진위원회 업무 범위를 열거하고 있다. 따라서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와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의 단체적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용역계약이 위 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추진위원회 업무 범위를 벗어난 계약에 해당해 그 계약의 효력이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에 승계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10월 21일 부산고등법원은 “구 도시정비법(2017년 2월 8일 법률 제14567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제14조 제1항(현행 제32조 제1항과 동일)은 추진위원회 구성에 대한 시장·군수의 승인을 받은 이후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설립인가를 받을 때까지의 기간 동안 추진위원회가 수행할 업무를 규정한 것임이 명백하다”는 입장에서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이전 단계의 가칭 추진위원회가 안전진단, 정비구역지정 및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신청 등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체결한 용역계약은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이전 단계의 업무와 관련된 것이어서 구 도시정비법 제14조 제1항이 적용될 여지가 없고, 이에 따른 법률관계는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 및 조합에 순차 승계된다”고 봤다.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의 업무범위에 대해서는 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이 열거하고 있지만,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 업무범위에 대해서는 이를 규제할 도시정비법상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도시정비법 제32조 제4항은 추진위원회가 제1항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이 토지등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거나 권리·의무에 변동을 발생시키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그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이 일정 비율 이상의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얻도록 한 취지에 관해 대법원은 ‘토지등소유자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토지등소유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적 보장을 기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08281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위와 같은 취지를 고려해 토지등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는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용역계약에 대해서도 이에 준하는 토지등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문제될 수 있으나, 위 부산고등법원 판결은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정비구역지정 등을 위해 체결한 용역계약이 구 도시정비법 제14조 제1항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동조 제4항도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봤다.

즉, 도시정비법에 구성승인 전 가칭 추진위원회가 구성승인을 받기 위해 한 법률행위의 효력에 관해 아무런 규정이 없고, 도시정비법에 따라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 또는 조합 단계에서 요구되는 각종 요건이 구성승인 전 가칭 추진위원회가 구성승인을 받기 위해 한 법률행위에도 필요하다고 볼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려우므로, 구성승인 전 가칭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용역계약은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나 주민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이 부산고등법원 판결의 입장이다.

 

∥ 결론

위 판례 법리에 따르면, 구성승인 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소수의 추진위원이 체결한 용역계약에 대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나 주민총회 결의가 없더라도, 구성승인 후 추진위원회 및 조합이 그 계약상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위 부산고등법원 판결 사안에서도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0.6%에 불과한 추진위원이 임의로 체결한 용역계약에 대해 조합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은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와 조합이 체결한 용역계약에 대해 조합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일정한 효력 발생 요건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비용부담을 수반하는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용역계약에 대해서도 이에 준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나 주민총회 등 일정한 효력 발생 요건이 요구된다고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비구역지정 고시 전에는 토지등소유자의 범위 확정이 불가능한 문제가 있어, 2009년 2월 6일 개정 이후 도시정비법은 추진위원회 구성승인 시기를 ‘정비구역지정 고시 이후’로 명문화한 점을 고려하면, 토지등소유자의 범위도 확정되지 않은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용역계약에 대해 일률적으로 구성승인 이후 추진위원회 및 조합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도 있다.

실무적으로 구성승인 이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정비구역지정 등을 위해 많은 용역계약이 체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원이 도시정비법상 구성승인 전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 법률행위에 대한 도시정비법상 규제가 없음을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구성승인 후 추진위원회 및 조합의 계약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으므로,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 토지등소유자들에게 용역계약 체결시 용역범위 및 용역대금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 법률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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